20220901-추억여행3-고려대학교
40년 전의 추억을 더듬어 모교 고려대학이 있는 안암동을 다녀왔다.
예전엔 전철이 없어 버스로만 가야 했는데 6호선이 뚫리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고대역 1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경영대로 이어졌다.

입학 성적이 우수해 기숙사에 당첨된 나를 위해 어머니는 짐을 옮겨 주시고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 대전까지 눈물이 쏟아져 어떻게 내려갔는지 몰랐다고 나중에 말씀해 주셨다.
어머니에게도 아들과의 첫 이별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나보다 잘 난 선남선녀들 속에서 나의 열등감과 외로움이 폭발했던 교정.
1987년 졸업 후 한 번도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2012년 딸이 고려대에 입학원서를 내고 시험을 치는 동안 같이 왔던 나는 잠시 학교를 둘러보았었다.
그로부터 10년, 이제 은퇴하고 추억을 곱씹기 위한 나만의 재방문이다.
나는 아직도 몸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꿈을 꾼다.
종로 어느 곳에서 늦은 시간 기숙사로 돌아가는 버스를 애타게 기다리며 가슴 졸이는 그런 꿈...
그런 꿈이 지금도 가끔 꿔지는 것을 보면 그만큼 나에게 낯선 서울 생활이나 대학생활이 큰 압박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런 교정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
교문은 옛 모습 그대로였으나 바람이 불면 켜켜이 쌓여 있던 최루탄 가루가 흩날리던 운동장은 산뜻한 광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입학 후 처음으로 가서 신체검사를 받던 학생회관은 그 모습 그대로였으나 학생들이 모여 토론하고 시위하던 민주광장은 학생들의 쉼터로 바뀌어 있었다.

정치학 강의를 듣던 강당 건물 옆으로 신관이 크게 증축되어 옛 모습을 찾기 어려웠고, 학과 사무실이 있던 건물은 철거되어 신축 중에 있었다.

봄이 되면 라일락 향기가 코를 자극하던 본관은 여전한데 주변엔 조지훈의 시비가 보이고 숲이었던 본관 뒤편으로는 인촌기념관 건물이 웅장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체력단련장이 있던 경영대 건물과 그 뒤편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신축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자연히 정문에서 우측에 있던 호상도 자리를 옮긴 모양이다.
개학을 해서인지 교정엔 젊음이 넘쳐났고 40년의 세월 동안 국제화되어서인지 외국인 학생들도 많았다.
나에게 대학 4년, 휴학 1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좀 더 넓은 시야와 사회 진출을 위한 스펙 쌓기...
하지만 난 그런 것보다 외려 연애사업과 자신과의 싸움으로 일관했던 시기였다.
낡은 하숙집에서 선후배들과 어울려 과자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며 사랑과 정치 사회를 이야기하던 어린 시절은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다.

옛 하숙집을 찾을 수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 골목길을 헤맸지만 워낙 많이 바뀌어 포기하고 말았다.
여긴 아직 옛 모습 그대로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