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5-동유럽 여행-부다페스트

2022. 7. 16. 19:53해외여행

동유럽 편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2019년 5월 2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다뉴브강에서 유람선을 탔다가 침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26명의 한국인과 헝가리인 2명의 명복을 빌며 아직까지도 시신을 찾지 못한 한 분도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2018년 그때 즈음하여 같은 배를 탔던 우리로서는 안타까움이 더했다.

2017년 첫 해외 배낭여행으로 이탈리아를 다녀온 우리는 자신감이 생겨 또다시 유럽여행을 꿈꾸었다.

이번에는 아내의 바람대로 야경이 아름답다는 동유럽을 여행하기로 하고 행선지를 고른 끝에 부다페스트-비엔나-체스키크롬로프-프라하 순으로 동선을 짜기로 하였다.

물론 그 반대의 순서대로 동선을 짤 수도 있으나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 말 6월 초의 날씨를 감안한다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고 이는 결국 소나기를 피해 쾌청한 날씨를 만나게 되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비엔나-체스키크롬로프-프라하로 이어지는 구간은 대중교통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비싼 셔틀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결국 체스키크롬로프에서의 여유로운 하룻밤 숙박은 포기하고 프라하에서 당일 투어 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방문지를 결정한 나는 항공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부다페스트나 프라하가 대형공항이 있는 곳이 아니다 보니 항공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항공기 상태가 좋다는 중동항공사의 경우에는 몇 번을 검색해 봐도 70만 원대로는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고른 것은 폴란드 항공.

바르샤바를 경유하는 길인데 도착시간도 오후로 좋았고 출발시간도 오전 늦은 시간이라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바르샤바 공항의 환승 대기 시간이 40분으로 제때 환승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 않고 특히 바르샤바에서의 환승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과연 40분 만에 보안 체크와 입국 체크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몇 번의 검색 끝에 서두르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어느 블로거의 글을 읽고서 항공권 구매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런 나의 선택은 결국 실패작으로 결론 나게 되고 험난한 동유럽 배낭여행의 출발점이 되리라는 것을 바르샤바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환승시간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숙소를 결정할 차례.

이번에는 지난번 여행의 경험도 있고 해서 비싼 호텔보다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에어비엔비를 이용하기로 했다.

회원 가입을 하고 집 전체를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아파트를 찾아보았다.

물론 위치는 역과 주요 관광지 중간지점 어디로 정하였다.

항공권과 숙소 준비가 끝나자 다음 준비해야 할 것은 주요 관람지의 티켓이었는데 딱히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은 없었고 부지런하게 현지에 일찍 가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빛과 같은 속도로 흘러 드디어 출발일인 5월 25일 금요일,

새벽같이 일어난 우리는 10시에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짐을 부치고 아침식사를 간단히 해결하고는 보안검색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폴란드항공에서는 간식으로 신라면 컵면을 제공해준다.

우리는 오가는 비행기 모두 맛있게 먹었다.

마음속으로는 과연 40분 만에 환승이 가능할지 불안감이 남아 있는 상태인데...... 비행기가 조금씩 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30분 넘은 시간에 인천 하늘 위를 날아가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에 승무원에게 40분 만에 환승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이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30분을 늦게 출발하여 8시간의 불안한 비행을 마치고 바르샤바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당초 도착시간과 큰 차이가 없어서 안도감이 잠시 들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승무원은 먼저 나와 다른 승객보다 먼저 내리라며 배려해 주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뒤로 남기고 종종걸음으로 출입국 직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다른 비행기의 승객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입술은 말라 가는데 출입국 직원의 입국허가 도장 찍는 소리는 느릿느릿하였다.

보안검색대도 느리기는 한없어 거기서 지체하기를 30여 분...

아내는 빨리 서두르라고 재촉하는데 이미 우리 비행기는 떠나고 없을 시간이었다.

 

헐레벌떡 뛰어간 부다페스트행 게이트는 당연히 휑하니 비어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탈색된 것 같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른 게이트에 있는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니 몇 번 게이트로 가보라고 하였다.

우리는 쉼 없이 종종걸음으로 해당 게이트를 가서 물었더니 이곳이 아니라 환승 서비스 센터를 가야 한다고 말해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transfer center.

그곳에는 우리와 같은 처지의 동지들이 이미 줄을 서서 직원과 씨름하고 있었다.

우리 앞에 있는 한국인 일행은 연결 비행기가 아예 취소되어 버린 상황이었는데 당일 바로 가는 연결 항공편이 없어 다시 두 번의 환승을 통해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는 항공권을 받아 들고 있었다.

우리는 환승할 때 본인의 잘못이 아닌 항공사의 잘못으로 연결 편을 놓칠 경우에는 항공사가 책임을 지고 고객을 목적지까지 운송해야 한다는 국제항공 규정이 있음을 그제서야 알았다.

따라서 환승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환승 센터에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할 일이다.

나는 항공권을 예약할 때 6시간 후에 부다페스트행 비행기가 하나 더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늦더라도 오늘 중에는 도착할 수 있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비즈니스 석으로 업그레이드된 6시간 후의 항공권과 비즈니스클럽 라운지 이용권을 내밀어 우리로 하여금 의도치 않게 바르샤바 공항에서 장시간 체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공짜로 비즈니스석을 타 볼 수 있게 되었다며 오! 괜찮네... 하는 말도 주고받았다.

넓지 않은 공항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고 비즈니스 라운지로 올라가 과일과 포도주 등으로 배를 채우며 출발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는 50분 지연 출발한다고 공지가 떴다.

한숨이 나왔다. 당초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가 연착했다면 이런 소동을 겪지 않고 계획대로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시간을 뒤로하고 비행기에 탑승한 우리는 우리에게 제공된 비즈니스 석을 보고는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대형 항공사의 장거리 노선에 투입된 좋은 비행기의 비즈니스 석을 예상했는데 유럽 도시 간을 오가는 비즈니스 석은 머리 받침대 색깔이 일반석과 달리 붉다는 것과 3열 좌석 중 가운데 좌석이 접혀 좌우 공간이 넓다는 것, 그리고 식사가 조금 좋다는 것 이외에는 일반석과 다를 것이 없었다.

비행시간도 1시간 30분으로 떴다 내리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애초 180도로 펼쳐지는 좌석을 운운하기에는 턱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유럽형 비즈니스 석의 개념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폴란드 항공의 약자인 LOT는 late or tommorrow의 머릿말이라고 이용객들의 비아냥을 들을 만큼 연발착이 심한 항공사라고 하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비싸더라도 중동 항공사를 이용했을 것을...

승무원이 다시 우리에게 식사를 권하였지만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식사를 마친 후라 더 이상 먹고 마실 형편이 안 되어 거절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는 늦은 밤에 우리를 부다페스트 공항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가방이 걱정되었다.

이전 비행기에 실려 있는지 이번 비행기에 실려 있는지 확인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방들이 쏟아져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에 서 있다가 우리 가방이 보이지 않자 불안감이 밀려왔다.

데스크에 달려가 물어보았더니 다행히 이번 비행기에 같이 있다고 말해 주었고 가방을 찾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 공항은 우리의 고속버스 터미널 보다 작아서 입국장을 나서자마자 바로 도로가 나왔다.

이미 시간이 늦어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려던 계획을 실행할 수는 없어서 택시를 타기로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묻는 것이 빠르겠다고 생각하여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에게 물었더니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Taxi라는 글씨와 녹색 줄 표시가 건물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환승 실패로 당황한 나머지 그 간단한 사인도 미처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부다페스트의 공항 택시 시스템은 택시 기사의 부당요금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믿을 수 있었다.

줄을 기다려 목적지 숙소의 주소를 말하자 예상요금과 타고 가야 할 택시 번호가 적힌 종이를 우리에게 주었다.

우리는 택시 승강장으로 가 우리에게 할당된 택시 번호를 기다렸다.

이윽고 택시가 도착하고 차에서 내린 택시 기사는 트렁크 문을 열어 주고는 멀뚱히 우리를 쳐다보고 무어라 말을 하였다.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짐작하건대 허리가 아프니 우리더러 직접 짐을 차에 실으라는 뜻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내가 직접 올린 가방과 우리를 태운 택시는 조용히 부다페스트 시내로 들어갔고 구글 스트리트 뷰에서 미리 봐 두어 익숙해진 곳 앞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내릴 때도 그 기사는 트렁크 문만 열어주고는 내가 짐을 내리는 것을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직원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숙박객에게 방 열쇠를 쥐여주는 호텔과 달리 에어비엔비는 열쇠 수령 방법이 다양했다.

그런데다 에어비엔비 이용은 이번이 처음이라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호스트가 사전에 나에게 알려 준대로 잠금 장치가 된 열쇠함에 미리 알려준 비밀번호를 돌리고 덮개를 열자 방 열쇠가 나왔다.

이제 2층 방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호스트가 만들어 보내준 동영상에는 열쇠 손잡이로 현관문을 열라고 되어 있었는데 손잡이는 조그만 플라스틱 뭉치인 반면 현관문에는 열쇠 구멍이 없고 옆면 벽 중간에 번호판만 있었다.

난감하였다.

1층에 있는 식당의 종업원에게 물어봐도 자기도 모르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열쇠를 들고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다른 입주자가 플라스틱 뭉치를 번호판에 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나의 한심함에 이마를 쳤다.

알고 나면 지극히 간단한 것을......

우리도 같은 방법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구형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탔다가는 내리지도 못할 것 같은 공포감이 들어 무거운 가방을 그냥 들고 계단을 이용했다.

에어비엔비에서 본 사진과 비슷한 그러나 조금은 낡은 듯한 공간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계획대로라면 밝은 낮에 도착하여 시내 관광을 마치고 들어와 쉬고 있었을 11시 늦은 시간에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짐을 풀었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5박을 지내야 한다.

오랜 시간의 비행과 연착의 긴장감, 현관문 소동 등으로 인해 지쳐버린 우리는 후다닥 씻고 잠을 청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길고 길었던 5월 25일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