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5-프라하-스냅촬영

2022. 7. 23. 09:35해외여행

6월 5일 화요일, 오늘은 대망의 스냅 촬영을 하는 날이다.

동유럽 여행을 계획할 때 아내는 이제 우리도 평생 기념이 될 만한 사진을 남겨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고 프라하에는 우리와 같은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주기 위해 수많은 한국인 사진작가가 영업 중에 있었다.

아내는 지금도 사진을 찍을 때면 다양한 얼굴 표정과 자세를 잘 연출하고는 한다.

아마도 마음속에 아직 뜨거운 정열 같은 것이 많이 남아서 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감정 표현에는 도무지 숙맥인지라 스냅 촬영을 하자는 아내의 요구에 많이 당황했고 꺼려했고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아내를 이겨낼 수는 없어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아내는 우리가 어떤 옷을 입어야 프라하의 붉은 지붕과 잘 어울릴지 고민하였고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이후 우리가 예약한 촬영 날짜의 날씨를 검색하면서 비 오면 안 되는 데를 수십 번 되뇌었다.

포털에서 프라하 스냅이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작가의 홈페이지를 만날 수 있다.

가격대도 다양하고 촬영 장소나 소요시간도 가격대 별로 다양하여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스투비플래너에 등재되어 있는 작가로 예약하였다.

사실 가격이 가장 합리적이어서 선택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가장 오래 프라하에서 작업하신 김성호 작가를 만나게 되어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아내의 걱정이 하늘에 닿아서인지 소나기 예보가 많았던 당일 날씨는 쾌청하였다.

 

약속 장소인 프라하 성으로 내려가는 트램 역 포호레렉에서 만난 김 작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표현하듯 편한 복장과 더불어 백발의 머리를 꽁지깃으로 묶은 채 엄청난 길이의 망원렌즈를 단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와 촬영용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야외 작업이 많은 탓인지 그의 얼굴에는 태양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는 프라하 성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면서 촬영 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2시간 정도의 촬영 시간 내내 수시로 앞뒤 포옹과 가벼운 키스와 멀리 시선 두기와 다리 자세 가다듬기 등을 시연해야만 했다.

내가 두려워했던 그 오글거림이 두 시간 내내 내 피부를 긁으며 오르내렸다.

첫 번째 촬영 장소는 스트라호프 수도원 앞에 있는 산등성이였다.

이곳에서는 프라하성과 비투스 성당의 첨탑은 물론 멀리 프라하의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돌로 된 벤치 위에서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를 한참 하고 있는데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몰려왔다.

작가는 우리더러 잠시 뒤로 물러서서 쉬자고 하였다. 타국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외국인의 설움이랄까?

영업을 위한 사진 촬영 때문에 단체 관광객에게 피해를 입히면 관광청으로부터 제재를 받는다고 하였다.

그곳에서 20분 이상 기다려 단체 관광객이 빠져나간 후 나머지 촬영을 하였다.

촬영 장소를 옮겨 다니는 중간중간에 우리는 작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는 30대 초반에 자유로운 삶을 원하여 국내 대기업을 관두고 홀로 이곳 프라하에 왔는데 자기가 처음 사진 스튜디오를 열었을 때는 지금처럼 사진작가가 많지 않았지만 자신이 채용해 차도 사주고 월급도 주며 같이 일했던 한국 청년들이 어느 순간 경쟁자로 바뀌어 있더라며 씁쓸해했다.

이제는 경쟁이 치열해져 스튜디오를 운영할 만큼의 수익을 거둘 수 없어 혼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지만 다행히 젊은 시절 돈을 모아 결혼도 하고 프라하 외곽에 수영장이 딸린 집도 마련했다고 하였다.

현지인인 이웃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주말에는 근처 주민들에게 수영장을 개방하고 수시로 가든 파티를 열어 주고 있다고 하였다.

외아들이 있는데 프라하 시내에서 원룸을 얻어 현지인 여성과 동거 중이라고 하였다.

자유로운 서구인의 삶을 동양인의 외아들은 빨리 적응한 것 같았다.

작가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프라하의 분위기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여러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촬영을 하였다.

수도원에서 조금 내려와 프라하가 내려다보이는 길옆 수풀, 수도원에서 내려오는 큰길,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길, 비투스 성당의 옆면 광장, 프라하 성의 난간, 프라하성의 정원 안에 있는 조그만 원형 건물, 원형기둥이 늘어선 정원 내 건물, 프라하 성을 내려가는 길, 조그만 조명등이 달려 있는 무채색의 벽, 그리고 카렐교가 잘 보이는 치헬나 공원의 수변 나무 그루터기 등등

비투스 성당에서 촬영할 때에는 성당의 첨탑을 앵글에 모두 담기 위해 작가는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워서 촬영하는 프로의식도 보여주었다.나는 그가 일어나기 쉽게 손을 잡아당겨 주어 그의 프로정신에 보답해 주었다.

오전 일찍 시작한 촬영이었지만 기온이 높아 작가는 내내 땀을 흘렸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연신 그가 가져온 생수를 마셨다.

그가 나의 나이를 물어보길래 63년생이라고 하였더니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그는 나보다 3~4살 정도 어린 듯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스위스를 가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촬영 일정이 뜸한 겨울철에는 스위스로 스키여행을 떠나는데 갈 때마다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최고의 여행지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카렐교를 배경으로 한 촬영을 끝으로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우리는 만났을 때 약속된 금액을 현지 화폐로 봉투에 넣어 이미 그에게 지불했지만 그의 프로정신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 점심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진심을 담아 제안하였다.

 그는 고맙다고 하면서도 1시에 다른 촬영이 예약되어 있다며 가봐야 한다고 하여 아쉬운 작별을 고하였다.

귀국하여 근 한 달 만에 작가가 보내 준 사진 파일을 받을 수 있었다.

기대했던 대로 300장에 가까운 사진이 프라하의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촬영되어 있었다.

그중 우리는 10장의 사진을 추려 작가에게 보내 보정 요청을 하였고 다시 한 달이 흘러 작가가 보정한 사진을 칼라와 흑백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두 컷의 사진을 골라 하나는 A1 사이즈로 크게 인쇄하여 거실 벽에 붙여 두었고 다른 하나는 조금 작게 A2 사이즈로 인쇄하여 현관 로비에 붙여 두었다.

이 두 사진 장식으로 우리는 집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 감탄의 인사를 얻어듣고 있다.

 스냅사진작가와 헤어진 후 우리는 쇼핑과 점심 식사 해결을 위해 까르푸를 찾아 트램을 탔다.

그곳에서 우리는 도난당한 기내용 가방을 대신할 튼튼한 비닐 쇼핑백을 저렴한 값에 구입하였고 인근 햄버거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촬영에 지친 몸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