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2-프라하 이동

2022. 7. 21. 10:17해외여행-동유럽

6월 2일 토요일, 운명의 하루가 밝았다.

하루 늦게 산 3일권 교통권 덕분에 비엔나 역까지 걷는 대신 전철로 이동했다.

그래 봐야 한 구간이었지만...

역에 도착하여 플랫폼 번호를 확인하고 정해진 차실과 좌석 번호를 찾아 앉았다.

 

목적지 프라하까지는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었다.

우리는 큰 가방은 우리 시선이 미치는 보관대에 넣어 놓고 기내용 가방은 우리 좌석에 두고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운행 중에는 불편해서 기차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이탈리아인은 듯한 가족 4명이 계속 떠들고 소란스러워 주의가 산만해졌다.

우리 뒤에는 젊은 유럽인이 혼자 앉아 있었다.

한참을 갔을까...

 

무슨 일인지 우리 부부에게 동시에 졸음이 내렸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더니...

그런데 프라하 도착 시간이 임박하여 선반 위에 있는 가방을 내리려고 보니 없어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가방을 올려놓은 아내는 나보다 더 좌절했다.

침착해야 했다.

뒤에 있는 젊은이가 우리를 안쓰럽게 생각했는지 화장실 같은 곳에 가보라고 말해 주었다.

도둑이 비싼 물건은 훔치고 가방 같은 것은 두고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앞뒤 칸의 화장실을 열어 보아도 검은색 가방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큰 가방은 무거워서인지 그대로인 채로 있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여권과 핸드폰, 항공권 이 티켓 등 여행 필수품을 별도로 보관하고 있던 조그만 백팩을 잃어버린 가방에 같이 넣어 두었다가 졸음이 쏟아지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가 꺼내 안고 졸았던 것이다.

잃어버린 가방 안에 뭐가 있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혈압약 같은 약이 먼저 생각났다.

혈압약이야 여행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안 먹어도 크게 탈 날 일이 없었다.

모자...

 

프라하에서 새로 사면 될 일이었다.

핸드폰 충전기...

 

급하게 에어비엔비 호스트에게 문자를 보내 가방 분실을 알리고 며칠 빌려 달라고 요청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위로의 말과 함께 ok 사인을 보내 주었다.

카메라...

 

가장 큰 손실이었다.

40만 원 가까이 주고 딸아이가 산 것이라 다시 사 주어야 했다.

불행을 미리 감지한 것이라도 한 것일까?

이 카메라에는 와이파이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는데 나는 여행 내내 저녁마다 할 일이 없을 때 그날 촬영했던 사진들을 내 개인 메일로 보내 두었다.

물론 와이파이를 이용하다 보니 파일이 축약되어 원본보다는 화질이 좋을 수는 없었지만 전혀 없는 것에 비하면 그것도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카메라 외에 가장 고가품은 가방 자체였다.

기내용 가방으로 산 것이라 1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출했었다.

 

생각해 보면 경제적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50여 년을 살아오면서 도난 같은 직접적인 범죄 피해에 노출되기는 정말 오랜만이라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다.

그리고 해외여행에서의 도난사고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고 그동안 잘 방어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벌어진 일이라 충격이 더 심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객실 내를 오가던 사람이 많지 않았고 우리가 졸았던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음을 생각해 볼 때 우리 뒤에 앉아 있던 젊은 청년이 자신의 선반 위에 있던 큰 가방을 만지는 척하면서 우리 가방을 자기 가방 안에 넣어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기에도 어려웠고 비록 생각이 들었다 하더라고 그 청년더러 당신의 가방을 열어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프라하 중앙역에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내렸다.

분한 마음이 들어 프라하 시에 이런 사실을 공식적 문서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찰서를 찾아 도난 신고를 하기로 하였다.

역무원에게 경찰서 위치를 확인하고 문을 두드렸다.

경찰이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도난당한 사실을 신고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더니 범죄 피해 신고서를 나에게 주면서 경위를 영어로 쓰라고 요구하였다.

볼펜을 받아 막 문서 작성을 시작하려는데 건장한 흑인 신사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역시 우리와 같은 도난 피해자였던 것이다.

경찰은 우리 도난 건을 먼저 처리해야 하니 두 시간 이후에 방문하던지 아니면 시내 다른 경찰서를 방문하여 접수하라고 하였다.

그들은 씁쓸한 웃음을 남기고 떠났다.

우리 도난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업무처리 속도가 느려서인지 내가 작성한 영문 신고서를 출력해서 우리에게 넘겨줄 때까지 근 1시간을 썼다.

그 사이 나는 에어비엔비 호스트에게 도난 신고 때문에 경찰서에 와서 조서 작성 중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리고 도착 예정시간이 지체되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호스트는 자신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일처리 잘하라고 격려하는 내용으로 답신을 보내 주었다.

세상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이 선인과 악인이 뒤섞여 있었다.

일처리가 느려터진 경찰관은 나에게 범죄 피해 사실 접수 신고서를 영문본과 체코어 본을 주면서 자기 눈을 두 손가락으로 크게 만들며 말하였다.

Keep your eye on.

우리가 졸고 있는 사이 가방을 분실했다고 했더니 눈을 항상 뜨고 있으라는 의미였다.

하루에도 몇 건씩 열차 도난 신고가 접수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오기로 경찰서에 신고했고 받아 두어야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이 범죄 피해 신고서는 결국 20만 원의 가치가 있었다.

숙소로 무거운 가방을 끌고 가면서 생각해보니 출국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외여행자 보험에 가입했었고 그 피해 보상 항목 중 하나에 분실물 보험이 있었던 것이다.

범죄 피해 신고서에는 당연히 가방 값 10만 원과 카메라 값 40만 원을 피해 목록에 기재해 두었기 때문에 귀국 후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최저 보상금 20만 원을 수령할 수 있어서 어느 정도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었다.

언덕길을 올라 숙소에 도착하여 벨을 눌렀다.

 

여성 호스트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그런데 숙소로 안내하는 곳이 반지하였다.

숙소를 정할 때 간혹 여행객을 고의로 속이는 호스트가 많다고 들어서 이런 곳을 피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지만 나도 이런 숙소를 피하지 못하였다.

숙소를 소개하는 호스트의 안내문에 몇 층에 숙소가 있는지 기재하지 않아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숙소 상태는 깨끗했다.

방도 두 개였고 특히 다행인 것이 창문이 건물 중앙의 정원으로 열려 있어 거리의 먼지나 소음으로부터는 자유로웠다.

실내는 반지하 특유의 쿰쿰함 같은 것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하였다.

다행히 아내는 실내가 깨끗해서 오히려 좋다며 나의 무안함을 감춰 주었다.

아내의 맛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또 이 친절한 호스트는 우리에게 경제적 도움도 주었는데 숙소 주변의 도로공사로 인해 소음이 심했다며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숙박 요금의 10%를 먼저 감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평점 10점으로 보답했지만 숙소가 반지하에 있다는 후기는 남겨 두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호스트에게 빌린 핸드폰 충전기를 살펴보았더니 예상대로 5핀 충전기였다.

이 호스트에게 나의 핸드폰 단말기 규격인 c-type 젠더가 있을 리 없어서 우리는 시내 구경도 할 겸 환전도 할 겸 해서 삼성전자 대리점을 찾아 나섰다.

환전소는 바츨라프 광장 오른쪽에 있어서 바로 찾았지만 삼성전자 대리점 위치는 찾기 어려웠다.

환전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만난 한국인 커플에게 물었더니 올드타운 안에 있는 큰 쇼핑센터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

쇼핑센터는 화약탑 인근에 있었는데 지하에 매장이 있었다.

그런데 외국인 매점 직원을 보자 갑자기 젠더라는 상품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긴장이 되니 영어도 더 꼬였다.

답답한 매장 직원이 충전기 관련 제품을 여러 개 가져다가 나에게 보여 주었다.

원했던 제품 c-type 젠더를 찾고서야 젠더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그런데 가격이 후덜덜했다. 7천 원...

우리나라에서 샀다면 500원 이내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간단한 제품인데 수입하다 보니 이런 가격이 나온 것 같았다.

배는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가판에서 샀다면 더 싸게 살 수 있었겠지만 그 가판을 찾는 것이 더 큰일이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3시쯤 도착하여 올드타운을 거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도난 신고에 두 시간을 쓰고 갑작스러운 충전기 단말기 구매에 다시 시간을 소비하여 벌써 늦은 저녁시간이 되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로 체코의 전통음식인 콜레뇨를 먹어 보기로 하고 숙소 가까운 곳에 있는 평점 좋은 식당을 찾았다.

식당 이름은 Hajnovka.

콜레뇨는 족발 비슷한 음식인데 우리가 먹는 족발은 정강이 아래 부분인 반면 콜레뇨는 무릎 부분이었다.

주문을 마치고서 한참을 기다려 콜레뇨를 영접할 수 있었다.

삶은 후 다시 오븐에 구웠기 때문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였다.

양이 적어 보였는데 아무래도 기름지다 보니 많이 먹을 수는 없었다.

결국 조금 남겼다.

3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양으로 보였다.

다행히 샐러드 같은 야채도 추가로 주문했기 때문에 그럭저럭 만족한 식사였지만 두 번 다시 콜레뇨를 먹지는 않았다.

사실 체코 사람도 콜레뇨를 늘상 먹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마치 우리 전통음식에 신선로가 있지만 매일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닌 것처럼 이들의 콜레뇨도 1년에 한 번 먹으면 좋을 그런 음식인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내미니 여성 웨이터가 서툰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랬더니 웨이터는 답답한지 쌩하니 카드 계산을 끝내고서는 다른 곳을 가버리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잠시 생각하니 체코에서는 10% 정도의 팁을 주어야 하는 예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결제할 때 팁까지 포함하여 결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은 식당의 경우에는 현금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웨이터의 이야기는 10%의 팁을 현금으로 따로 낼 것인지 카드에 포함해서 결재할 것인지를 물어본 것으로 생각되었다.

경황이 없었던 체코에서의 첫 식사인지라 결국 팁을 주지 못하고 나오고 말았다.

팁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웨이터 입장을 생각해 보면 미안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