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6-융프라우-피르스트

2022. 8. 4. 19:16해외여행-크로아티아.스위스

6월 6일 목요일,

융프라우요흐와 피르스트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가장 기대했던 날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실망스러웠던 하루가 되고 말았다.

이동거리가 멀고 트레킹도 1시간 정도 계획하고 있어서 아침 일찍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서기 전 거실의 창문에서 바라본 융프라우 봉 주변으로는 짙은 구름이 가득 차 있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제 탔던 기차를 그대로 다시 타고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올라간 다음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기타로 갈아탔다.

이 열차는 1등석과 지정 2등석, 자유 2등석 이렇게 입구를 구분하여 개찰하고 있었다.

 

어제는 그나마 비구름 사이로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던 융프라우 봉이나 아이거 산이 오늘은 하얀 운무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곳보다 더 높은 정상 부근에는 심한 눈보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참고로 전망대가 있는 융프라우요흐의 해발고도는 3,454m, 융프라우는 4,158m, 마터호른은 4,478m, 알프스의 최고봉은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지역에 있는 몽블랑으로 4,810m이다.

 

중간 정착역인 아이거글래쳐 역에 이르기 전 검표원이 다가왔다.

나는 7장의 vip 패스를 여권과 함께 한꺼번에 꺼내 보여 주었다.

그런데 검표원이 서툰 영어로 스위스 트래블 패스를 보여 달라고 하였다.

어제 날짜로 이미 사용 기한이 경과되어 쓸모없는 줄 알고 숙소에 두고 왔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다.

 

당황하니 영어도 잘 나오지 않았다.

더듬더듬 당신이 보여 달라고 하는 패스는 호텔에 두고 왔다고 했더니 이 티켓은 패스로 인해 추가 할인을 받은 것이라 패스를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나마 찢어버리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티켓을 발권할 때 스위스 공무원이 이미 패스 소지 여부를 검사한 다음 발권해 주었는데 그것을 또 다른 공무원이 이중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그들의 고지식함에 말문이 막혔다.

싸우거나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도 잘 모르는지 핸드폰으로 사무실에 있는 직원과 독일어로 한참을 이야기한 후 나에게 우선 363 스위스프랑의 추가 요금을 결제하고 관광을 마친 후 내려가서 숙소에 있는 패스를 가지고 티켓을 산 곳으로 가면 환불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추가로 결제하는 금액 전체를 환불받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아마도 한 명당 5 스위스프랑 정도의 벌금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조금씩 머리가 아파오고 있었는데 여기서 결정타를 맞아 버렸다.

 

다른 관광객들은 모두 융프라우요흐 관광을 위해 쏟아져 들어가는데 우리 7명은 죄인처럼 줄줄이 검표원을 따라 매표소 앞에 다다른 후 사무실 안에 있던 다른 여직원이 추가 요금을 카드로 승인받을 때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가지고 있던 티켓 7장에 추가로 다시 7장의 티켓을 받은 후 우리도 관광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나만 두통이 온 줄 알았더니 우리 모두에게 두통이라는 고산병 증세가 찾아왔다.

특히 대구 형님은 증상이 좀 더 심해 걸을 때마다 구미 동서가 옆에서 부축해야 할 정도였다.

 

고산병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초콜릿을 먹고 호흡을 길게 하며 천천히 관광 유도판을 따라 걸어갔다.

산을 파서 만든 지하공간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었다.

얼음궁전과 얼음조각, 나무인형, 미니어처, 스핑크스 전망대 등등 차례대로 구경해 나가면 마침내 야외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모두 경량 파카를 입고 있었지만 문을 열고 나가자 몰아치는 6월의 스위스 눈보라에 모두들 덜덜덜 떨어야 했다.

삼대가 덕을 쌓지 못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유명한 스위스 깃발이 달린 국기 게양대까지는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떨리는 손으로 입구 근처에 있는 조그만 스위스 국기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그것도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 대는 바람에 대구 형님이 깃발을 제때 잡지 못하여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내 손으로는 냉동고 속에 있는 것 같은 고통이 전해져 왔다.

단체 사진 후에는 가족별로 2명씩 사진을 남기고서는 눈보라에 쫓겨 실내로 들어와야만 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눈보라를 보기 위해 그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나 속은 쓰렸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다.

시간이 촉박한 것 같아 지나쳤던 스핑크스 전망대로 올라가 밖으로 나갔으나 여기서도 눈보라에 귀싸대기만 한 번 더 맞고 바로 쫓겨 들어와야 했다.

우리는 이것도 추억이려니 하고 생각해야만 했다.

 

실내는 간이 카페와 기념품점이 있었는데 다들 머리가 아픈 가운데에서도 기념품 사는 데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물건을 고른 후 계산을 할 때 점원이 패스가 있으면 50% 할인이 된다고 했다.

패스를 구매할 때 컵라면과 할인 둘 중의 하나 선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이것이 더 이익이 된다 싶어 패스를 내밀었다.

그러나 내가 잘못 알아들어서인지 그들의 발음이 시원찮아서인지 fifity-50%이 아니고 fifteen-15%이어서 난감했다.

상점 맞은편에는 1993년도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1센트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목걸이의 펜던트가 되어 나오는 압착 기계가 있었다.

 

11시가 되어서 컵라면과 삶아온 계란으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내가 카페 카운터에 가서 남자 주인장에게 3장은 상품 할인으로 이미 썼다고 서툰 영어로 이야기하며 7장의 티켓을 내밀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굵은 사인펜으로 티켓 하나하나에 표시를 하더니 뜨거운 물로 가득 채워진 컵라면을 나에게 내밀었다.

추가로 산 티켓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찌 되었거나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매콤한 라면 국물을 맛있게 먹었다.

 

눈보라 때문에 밖을 나갈 수도 없고 머리가 아픈 것도 진정되지 않아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피르스트로 내려가기로 했다.

어제와 달리 운무에 가려진 아이거 산을 뒤로하고 그린델발트역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피르스트로 올라가는 곤돌라 정류장까지는 123번 버스를 타야 했다.

인터라켄의 버스 기사와는 달리 이곳 그린델발트의 버스 기사는 탈 때마다 티켓을 확인하고 있었다.

 

일곱 장의 티켓을 부챗살처럼 펼쳐 보여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10분도 채 안 되어 내린 정류장.

좌우를 둘러봐도 곤돌라 정류장이 보이지 않았다.

정류장 앞으로 잠시 갔다가 아니다 싶어 뒤로 돌아다보니 오르막인 골목길 안쪽으로 승강장이 보였다.

 

뮈렌처럼 패스를 다른 티켓으로 바꿔야 하는가 싶어 매표소로 가서 패스를 보여주니 그냥 들어가라고 손짓해 주었다.

곤돌라는 소형으로 최대 6명이 탈 수 있었는데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눠 탔다.

곤돌라는 중간중간에 정차역이 있었는데 처음 타본 나는 내려서 갈아타야 하는 줄 알고 첫 번째 정류장에서 내렸다가 다시 탔으나 계속 타고 있으면 피르스트 종점까지 그냥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점점 고도를 높이자 클라이네샤이덱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한 안개가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더구나 아내가 라면과 계란을 급하게 먹어 체했는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피르스트 곤돌라의 가장 높은 정류장에 내렸다.

 

우선 매점에 들러 아내의 속이 풀리도록 콜라를 사 주었다.

밖을 나가 보았지만 짙은 안개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더 이상 관광을 계속할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융프라우에서 얻어 왔던 머릿속의 무거운 짐은 아직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어서 다들 힘들어했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융프라우는 제대로 못 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곳 피르스트는 꼭 방문해야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나로서는 무척 아쉬운 순간이었다.

바흐알프제 호수까지의 트레킹과 절벽에 매달려 있는 스릴 워크나 루지 썰매 같은 액티비티로 유명한 곳인데......

스위스 여행의 아쉬운 여백으로 남겨두어야 했다.

 

또 다른 불안감은 내일 아침 일찍 베른으로 떠나야 하는 우리로서는 융프라우에서 추가 결제했던 요금을 오늘 중으로 환불받아야 했는데 역 직원의 근무시간이 6시면 종료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마음이 급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꼬인 하루였다.

어렵게 왔던 길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시 내려갔다.

어제처럼 튠 호수를 차창 밖으로 구경하며 인터라켄 역에 도착하니 5시 정도였다.

아내와 나는 같이 숙소에 들러 패스를 가지고 와서 환불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나머지 일행들은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기로 했다.

104번 버스를 타고 내려서 숙소에 들렀다가 다시 역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역에 도착하기까지 30분이 소요되었다.

나는 티켓 14장과 패스를 들고 번호표를 뽑아 순서를 기다려 역무원에게 가서 내가 융프라우 검표원에게 들은 이야기를 천천히 말해 주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할머니 역무원은 처음에는 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좀 더 천천히 조리 있게 영어로 경과를 설명했더니 역무원은 패스 하나로 융프라우를 두 번 올라간 것으로 착각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 경우가 많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딸도 패스로는 단 한 번만 융프라우요흐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두 번 올라갔다가 검표원에게 적발된 후 내려올 때는 별도로 티켓을 다시 구매했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었던 기억이 났다.

할머니 역무원은 내가 준 티켓 14장과 패스와 여권과 함께 독일어로 인쇄된 취소 영수증을 건네주면서 영수증의 취소라는 독일어에 밑줄을 그어 주며 cancel이라는 뜻이라고 말해 주었다.

할머니 역무원은 또 융프라우요흐 검표원이 나에게 겁을 주었던 1인당 5 스위스프랑의 벌금은 부과하지 않아 그나마 위안이 되어 주었다.

이렇게 실수투성이였던 하루가 저물어 10박 12일 여행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체크아웃을 준비해야 했다.

호스트에게 내일 출발시간을 정정해서 8시로 다시 알려 주었다.

 

통보한 체크아웃 시간보다 늦게 출발해서 숙소를 청소하러 방문하는 직원을 30분 이상 기다리게 하면 50 스위스 프랑의 페널티가 부과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했다.

그런데 호스트를 직접 만나 1600 스위스프랑의 숙박비를 주고 영수증을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서 나중에 숙박비를 못 받았다고 떼를 쓸 가능성도 생각해 두어야 했다.

대구 형님에게 부탁하여 호스트가 준비해 둔 현금봉투에 현금을 넣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두었고 접착제로 밀봉한 다음 청소 직원이 뜯어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영어와 한글로 서명을 해 두었다.

다행히 이 현금봉투는 순조롭게 호스트에게 전달되었는지 귀국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잘 받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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