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2-이탈리아 배낭여행 전 이야기

2022. 7. 9. 09:42해외여행-이탈리아

우리 부부는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때 친척이 주선한 미팅에서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하였다.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던 연애시절 우리 부부는 당시 "새마을 데이트"라고 불렀던, 이곳저곳을 마냥 걷는 방식의 만남을 자주 가졌다.

다행히 서로 코드가 맞아서인지 그런 방식의 만남에 아내는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았고, 살면서 여행으로 자주 둘만의 시간을 가지자고, 은퇴 후에는 세계를 유람하며 살자고 약속하였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혼 후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자주 가까운 곳 위주로 둘이서 여행을 다녔다.

자가용을 구입하기에는 형편이 어려웠던 관계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동해안으로 다녀오기도 하고, 서해안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또 그럴 시간이 없으면 주말을 이용해 동네 뒷산이라도 다녀오곤 하였다.

같이 걸으면서 가정 이야기, 직장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었고, 정 대화거리가 없으면 주변 자연환경을 감상하며 걷곤 하였다.

딸을 낳고서는 자가용을 구입하게 되었고, 아이가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에 들어가기 전인 중학교 입학 때까지는 아이와 함께 국내의 여러 곳을 다녔다.

또 3박 4일 일정으로 도쿄로 배낭여행도 다녀왔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6년 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아무래도 아내가 아이 돌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되고, 주말에도 아이는 쉼 없이 학업에 열중하는데, 아이를 팽개쳐 두고 부부 둘이서 어디 여행 가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서야 우리 부부에게도 과거의 자유가 돌아왔다.

먼저 결혼기념일에 맞추어 정선으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가톨릭에 입교하여 세례를 받은 2014년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성지 111곳을 순례하기로 하고 매월 한두 번씩 여행을 겸해 성지를 방문하고 순례 확인 도장을 찍는 재미로 3년을 보냈다.

이제 성지 순례는 제주도 8곳만 남아 있다.

그러던 차에 딸아이는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다며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4개월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였다.

평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왔던 우리 부부였지만 막상 항공권을 발권하고 출발 날짜가 다가오자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린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혼자서, 4개월이란 긴 기간 동안 정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우리 부부의 불안감에도 아랑곳 없이 아이는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향해 날아갔다.

공항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우리 부부는 아이가 무사히 로마에 도착하기를 고대하며 카톡을 연신 쳐다보았다.

열몇 시간이 흘러 처음으로 딸아이로부터 로마 시내의 전경을 담은 사진이 새벽에 전송되어 왔을 때, 우리 부부는 마치 화성 탐사선이 화성 지표면에 무사히 착륙했다는 신호를 처음 보내왔을 때의 나사 직원처럼 침대에서 환호성을 올렸다.

이후 아이는 밤낮이 반대인 상황에서 수시로 우리의 단잠을 깨워가며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등을 쏘다닌 기록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도 덩달아 유럽 여행에 대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고, 어느 정도 유럽 배낭여행에 대한 공포감을 덜 수 있었다.

딸아이가 4개월에 걸친 유럽 방랑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여 학업에 복귀한 2016년 가을, 아내가 은퇴 후 세계여행을 다니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체력이 달려 무리일 것이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는 게 어떻겠냐고 나에게 말하였다.

말인즉 옳은 말이라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떠나 보자고 약속하였다.

결과적으로 딸의 배낭여행이 우리 부부의 배낭여행에 모범이자 선구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 모두 직장인이었던 관계로 딸아이처럼 몇 달씩 길게 여행을 다녀오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그렇다고 이곳저곳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패키지여행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싶지는 않았던 터라 2주간의 기간으로 한나라씩 유럽여행을 가자고 합의하였고 그 첫 나라로 이탈리아를 선택하였다.

유럽 배낭여행의 첫 행선지로 이탈리아를 선택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역사를 좋아하는 나의 기호가 반영된 결과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재미있어 몇 번이나 다시 읽었던 나로서는 로마의 포로 로마노에서 천년 제국이 남긴 흔적을 보며 로마 제국의 역사를 현장에서 반추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