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8-크로아티아-자그레브-공항

2022. 7. 24. 16:02해외여행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출국일인 5월 27일 월요일이 되었다.

28일 새벽 1시 1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 탑승을 위해 8시쯤에 인천공항 제1청사 출국장에 모두들 무사히 모였다.

우리와 평촌 처형은 같은 공항버스를 탔고 대구와 구미에서는 가각 대구와 구미를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이용해 모였다. 

우선 늦은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고 출국장 4층에 있는 한식당을 찾았다.

앞으로 10일 동안 한식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모두들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가방을 부치고 보안검색을 거쳐 탑승구 앞에서 기다렸다.

나와 대구 형님은 벤치에 앉아 여행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아내와 여성 동지들은 면세점을 둘러보며 면세점 직원들에게 출국 인사를 하고 다녔다. 

 

우리가 가려는 크로아티아는 다른 동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에 둘러싸여 있어 복잡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120년간 받기도 했으나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의 일원이었으나 치열한 분리 독립투쟁 끝에 크로아티아 공화국으로 독립에 성공하였고 1940년대의 독재시대에는 소수민족인 세르비아인과 유대인 등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초반까지 세르비아 민병대와의 내전을 치르기도 한 나라이다.

크로아티아인은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이고 소수민족인 세르비아인은 세르비아정교도라고 하니 이들 간의 전쟁에는 종교 갈등도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하겠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평화가 찾아든 이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아드리아 해에 있는 천여 개의 섬으로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관광지가 되었으며 우리에게는 꽃보다 할배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진 곳이다.

근 10시간을 날아 격추라는 공포를 느낄 틈도 없이 무사히 도하 공항에 도착했다.

환승 절차를 마친 우리는 탑승 게이트 앞 대기 좌석에 모여 건조해진 피부를 촉촉하게 회복시키기 위해 7명 모두 마스크 팩을 하였고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3시간의 환승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다시 5시간여를 날아 오후 1시쯤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하였다.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입국 절차를 마친 우리는 먼저 차량을 인수하기 위해 입국장 좌측에 있는 렌터카 사무실로 갔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왔는지 아예 한글로 쓰여진 안내문을 비치해 두고 있었다.

직원은 자동차 열쇠를 넘겨주며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 주고는 약도 한 장을 내밀며 차를 우리가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알겠다고 하고는 약도를 보며 자동차가 주차된 곳을 찾아가는데 처음 온 곳이라 그런지 약도가 부실해서인지 내가 설명을 건성으로 들어서인지 금방 찾을 수 없었다.

주차 중인 현지인에게 물어 보아 가본 곳에도 지정된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10여 분을 헤맨 끝에 할 수 없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시 사무실을 찾았다.

우리가 찾아 헤매던 주차장에서 조금 떨어진 주차장으로 가야만 했는데 내가 약도의 설명을 건성으로 들었던 것이었다. 이번엔 한 번에 제대로 찾아 차량 상태를 확인하였다.

검은색 벤츠 승합차량이었는데 차량의 겉면에는 그동안의 크고 작은 사고이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풀 커버 보험을 가입해 두었으니까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지만 차량을 그때그때 수리하지 않고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고자 하는 회사 방침을 알 수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었다.

벤츠 차량은 처음 타 보는 것이라 출발 전에 우선 차량 안에 있는 각종 스위치의 작동 방법을 알아야 했다.

좌우 방향 등을 조작하는 손잡이는 왼쪽에 있었고 그 손잡이 끝에 와이퍼를 작동하는 탭이 달려 있었다.

빈도 조정은 또 그 중간에 있는 은색 실선 모양의 손잡이를 돌려야 했다.

우측 손잡이에는 변속기가 달려 있었는데 위아래로 움직이면 주차-후진-전진이었고 끝에 있는 작은 버튼을 누르면 브레이크가 작동되는 구조였다.

그와 별도로 핸드브레이크는 좌측 하단에 있는 페달을 밟도록 되어 있었다.

 

아내가 걱정이 많았던 트렁크는 다행히 28인치 큰 가방 7개를 모두 수용할 정도로 넓었고 좌우에는 창문이 없어 도난으로 부터도 안전해 보였다.

9인승 좌석에 7명이 앉는 것이어서 실내에는 여유가 있었으나 시트가 안락하지는 않았다.

준비해 간 핸드폰 거치대를 송풍구에 걸치고 구글 맵을 켜서 숙소를 좌표로 찍었다.

그동안 선배들의 블로거를 통해 유럽을 렌터카로 여행할 때는 구글 맵의 내비게이션 기능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과연 그들의 말대로 잘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로 여행 기간 내내 헤매지 않고 구글 맵이 알려주는 대로 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나라의 네비 앱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속도제한이라든지 운행 주의 안내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어서 운전자가 알아서 조심운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나는 혹시 모를 통신장애를 염려하여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오프라인지도로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는데 크로아티아에선 쓰지 않았지만 보스니아에서는 통신이 원활하지 못하여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짐도 모두 싣고 사람도 모두 타고 나는 차의 시동을 걸어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평소 운전하던 승용차와는 달리 좌석이 높아 시선이 좋았지만 차량의 길이가 조금 더 길었던 관계로 좁은 곳을 빠져나올 때 신경을 더 써야 했다.

그런데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흐려지더니 도심으로 들어오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많은 비는 아니었으나 이 비가 계속된다면 늦은 오후 자그레브 시내를 관광할 때 불편할 것 같았다. 첫 숙소인 자그레브 아파트의 호스트는 여주인이었다.

에어비엔비 앱을 통해 문자를 보내 3시쯤 도착할 예정이라고 알려주었더니 호스트는 자기 대신 아버지가 1층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답장해 주었다.

다른 동유럽의 도시처럼 자그레브도 차량 통행이 많지 않고 도록 폭도 넓은 게 3차선 정도라 우리의 대도시에 비하면 운전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숙소로 알고 주차한 곳은 숙소 바로 옆 건물이었다.

출발 전 구글 스트리트 뷰를 통해 출입구를 확인하고서도 막상 도착해서는 입구 하나 전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다시 호스트에게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냐고 문자를 보낸 후 입구로 돌아와 보니 건너편 주차장에 노인 한 분이 서계셨다.

우리가 찾던 바로 그 할아버지였다.

차를 돌려 한 칸 건너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건물 입구가 좁고 낮아 차가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건물 천정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들에게는 3층이지만 우리에게는 4층인 숙소로 모두들 들어갔다.

가방은 엘리베이터로 옮겼는데 구식 엘리베이터라 덜컹거려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호스트의 아버지는 80세는 되어 보였는데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나에게 집 구석구석을 소개해 주고 체크아웃할 때의 방법과 문 열쇠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 열쇠 꾸러미를 주고는 우리들 모두의 인적 사항을 딸인 호스트에게 문자로 보내 달라고 하였다.

작은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무사히 도착하고 3개의 방에 누가 잘 것인지를 정한 다음 거실로 모였다.

1시 공항 도착 이후 점심 식사를 할 틈도 없이 왔기 때문에 모두들 배가 고파왔을 것이다.

서둘러 짐을 풀어 놓고 올드타운으로 나가서 늦은 점심 겸 저녁식사를 먼저 해결하기로 하였다.

이곳을 숙소로 결정한 것은 숙소의 상태나 가격보다는 숙소의 위치가 올드타운과 바로 인접해 있어서 자그레브 관광 시 주차비나 교통비가 추가로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