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30-비엔나-링스투라세-성슈테판성당

2022. 7. 18. 10:02해외여행-동유럽

링스투라셰는 비엔나의 올드타운을 원형 모양의 트램 노선이 돌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가까운 역인 필그림 역까지 걸어가서 비엔나 패스 3일 권을 구매하기로 하였다.

역 입구에 패스 판매 기계가 있었는데 신용카드를 넣고 3일권 패스를 선택하고 구매 버튼을 누르니 승인 거절이 표시되며 카드가 튀어나왔다.

분명 블로거의 글을 읽었을 때는 신용카드로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승인이 안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 큰 역이 아니라 역무원도 없어서 물어볼 만한 사람도 없었다.

이번엔 현금을 써 보기로 하고 같은 절차를 밟았지만 현금도 튀어나오며 구매에 실패하였다.

난감했다.

결국 지나가는 젊은 현지인을 붙잡고 왜 패스를 살 수 없는지 물었다.

그는 나의 지폐를 보더니 큰 화폐로는 살 수 없다고 말하며 근처에서 작은 화폐로 바꾸어 사라고 말해 주었다.

또한 카드는 체크카드만 가능하다고 알려 주었다.

아무래도 관광객이 많은 중앙역의 기계와 작은 역의 기계가 달랐던 모양이었다.

그 잘생긴 젊은이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후 역에서 올라와 보니 맥도널드 가게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지폐를 보여 주며 잔돈으로 바꿔 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친절하게 동전으로 교환해 주었다.

그 청년의 조언이 효력을 발휘하여 우리는 마침내 비엔나 패스를 구매할 수 있었다.

뭐든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

전철을 타고 올드타운의 중심지 성 슈테판 대성당으로 갔다.

슈테판 대성당은 비엔나 주교좌성당으로 밀라노 성당처럼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첨탑이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주변에는 관광용 마차가 대기하고 있어 말똥 냄새가 진동했고 성당 인근 광장에는 기념품점과 노천카페들이 즐비해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성 페터 성당으로 갔다.

가는 길에는 페스트 종식 기념 조형물이 있는데 중세 시대 흑사병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으면 이런 기념비까지 세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조금 더 걸어서 신궁전이 있는 널찍한 공간으로 들어왔다.

여기에는 부다페스트의 부다 왕궁 앞에 있던 외겐 장군의 동상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비엔나까지 진격해 온 오스만튀르크를 물리쳐 기독교 세계를 지킨 공로를 인정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

지금은 영세 중립국으로 쪼그라든 모양새이지만 중세까지 오스트리아는 중부 유럽의 강국이었다.

샤를 마뉴 대제의 프랑크 왕국이 분리되면서 생긴 동프랑크가 오스트리아의 전신이었다.

비엔나까지 점령했던 마자르족을 물리치고 신성로마제국을 이룬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프랑스와 세력 다툼을 벌일 정도의 강국이었으며, 프랑스혁명 당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루이 16세의 정부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왕가 출신으로 프랑스와의 관계 증진을 위한 정략결혼의 희생물이었다.

세르비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왕세자가 암살되면서 천만 명이 넘는 인명이 희생된 세계 제1차 대전이 시작되었고 나치 독일의 제3제국에 의해 강제 합병되는 불운을 겪으면서 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의 멍에를 짊어졌고 이후 1955년부터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주변국으로부터 인정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스트리아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마리아테리지아인데 남편인 슈테판 대공을 대신하여 오스트리아를 중세 강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비엔나 하면 비엔나커피가 가장 먼저 생각나지만 세계 도시 가운데 살기 좋은 도시로 늘 1~2위를 다투는 곳이기도 하다.

도나우 강이 북서에서 남동쪽으로 가로지르는 가운데 형성된 이 도시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이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로 번창했으며 하이든, 모차르트, 브람스,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교과서에 나오는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이 활약했던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좌우 대칭 건물 한가운데에 위풍당당한 자세로 앉아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을 보면서 우리는 동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에 와 있음을 느꼈다.

어둑어둑해져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식품점에 들러 스테이크 재료와 이 지역 특산품인 키안티 포도주를 사들고 왔다.

나는 땀에 젖은 티셔츠를 벗어 놓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내는 모처럼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하기로 하였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한참 나던 때 나는 오늘 산 비엔나 패스 3일 권이 빨래 속 티셔츠에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에게 주머니를 확인한 후 빨래를 시작했냐고 물으니 아내가 펄쩍 뛰었다.

세탁기를 멈춰야 했다.

그러나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산 기종이라 어찌할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은 냉정하게 흘러 온수로 헹굼까지 다 마친 후 티셔츠 상단 주머니를 뒤져 확인한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종이 뭉치였다.

3만 원이 그냥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어렵게 발권한 3일짜리 교통권을 구도심 왕복 2회 사용으로 끝내 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액땜했다 치자고 서로 위로하며 저녁을 먹기 위해 포도주 병을 막고 있는 코르크를 제거하기 위해 와인 오프너를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또 한 번의 좌절이 우리를 덮쳤다.

대나무 젓가락을 이용해 보았지만 바로 부러져 버려 쓸모가 없었다.

쇠젓가락이 있으면 어떻게 쑤셔 넣어서 흘려 잔으로 받아 마시련만 비엔나에서 젓가락, 그것도 쇠젓가락이 있을 리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방의 문을 두드리니 인도계 여주인이 나왔다.

와인 오프너 빌려줄 수 있냐고 했더니 자기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오기가 났다.

가늘고 긴 과도로 코르크를 후벼 팠다.

절반 정도 파내고서는 남은 코르크를 밀어 넣었더니 마침내 오스트리아 특산 포도주 닭표 화이트 와인 키안티를 마실 수 있었다.

세 번의 해프닝으로 비엔나에서의 힘든 하루를 그렇게 마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