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1-반야심경

2022. 8. 22. 09:25책읽기

이 책을 처음 보게 된 것은 1986년 봄이었다.

한해 휴학 후 복학한 나에게 의성군 탑골 출신 후배가 읽어 보라며 준 책이 반야심경이었다.

그때 후배가 준 반야심경의 저자는 오쇼 라즈니쉬.

나중에 책에서 말한 그의 자유로운 정신과는 다른 미국에서의 그의 이중적인 실제 삶의 모습을 알았을 때에는 배신감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 방황 상태에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 같은...

 

알듯 모를 듯한 깨달음 같은...

그러면서 나를 둘러싼 이 물질세계가 결코 무한한 것도 의미 있는 것도 아니라는...

그러므로 어디에도 구속받지 말고 고통받지 말라고...

 

대학시절 하야카와 교수의 의미론을 배웠던 나로서는 반야심경에 있는 내용이 무려 2천 년 전에 이루어진 각성이라는 것에 놀랐다.

하야카와 교수의 의미론의 핵심은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많은 요소가 개입되어 있어 진실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소의 경전인 반야심경도 우리가 오감, 즉 눈과 귀와 코와 혀와 촉각으로 감지하는 색채나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촉각으로 알게 되는 물질세계가 실체가 없으며 실체가 없는 것이 곧 오감이라고 말하며, 이런 공의 사상을 깨달으면 세상에서 생겨나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전문적인 해설은 여기에...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21513

 

반야심경

반야경전의 중심사상을 270자로 함축하여 서술한 불교경전. 대승불교 반야사상(般若思想)의 핵심을 담은 경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는 경으로 완전한 명칭은 ‘마하반야바라

100.daum.net

나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집착을 끊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명예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下心할 수 있었다.

 

반야심경을 생각하면 이 책을 나에게 선물해 준 후배에게 지금도 자다가 이불킥하는 미안함을 금할 수 없다.

그 후배는 미안하게도 부족한 나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에게 먼저 책을 선물한 이후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도 하고 학교 식당에서 밥도 같이 먹자고 하였다.

나는 후배의 마음의 변화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대학 4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입사시험을 앞둔 나에게 그 후배는 조용한 찻집에서 시험 잘 보라며 조그만 선물을 건네며 자신의 마음 한 자락을 나에게 꺼내 보였다.

순간 당황한 나는 그럴 수는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때 나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지금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찻집을 나서는 나의 뒤를 따라 후배의 흐느낌 같은 소리가 바로 따라왔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짓이었다.

나는 예쁜 꽃을 밟아 버린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다.

여린 후배의 마음을 그렇게 단박 잘라 버릴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달래주었어야 했는데...

가끔씩 대학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면 꼭 그때 나의 철부지 행동이 떠올라 몸이 오그라드는 회한을 가지곤 한다.

이 글을 그 후배가 볼 일은 없을 것이겠지만...

 

나의 철부지 행동을 용서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하지만 못을 뺀다고 못을 박은 자리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이후로 졸업할 때까지 그 후배를 만나지 않았다.

입사와 결혼과 같은 일들이 물 흐르듯 지나간 이후 어느 날 정말 우연히 충무로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던 중 환승하던 서울역에서 그 후배의 얼굴을 보았다.

아마도 같은 출근길이었던 듯...

그 후배도 나의 시선을 외면하고, 짧은 순간 나도 긴가민가해서 출근길을 재촉하느라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였다.

그것이 그 후배와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아마도 그 후배도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겠지...

 

지금까지 잘 지내왔겠지...

앞으로도 잘 지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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