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8-용서

2024. 2. 8. 11:23성당이야기

레지오 단원들은 일 년에 두 번 상하반기로 나누어 전단원 교육을 받는다.

저명한 외부강사를 초빙해서 레지오 단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을 높이는 시간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대개의 경우에는 주임신부의 강론을 듣는 경우가 많다.

지난주 전단원 교육에서 주임 신부님은 용서에 대해 강의하셨다.

긴 글이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한 강론을 흘려버리기 아까워 공유해 본다.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용서에 대하여)

찬미 예수님!

2024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나고 2월 첫째 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어떤 결심을 하셨나요?

혹시 지키기 너무 어려운 것을 결심하셔서 힘들어하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며, 이 한 주간을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대림 판공을 지내면서 아니면 사순 판공이나 평소에 고해성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백하는 죄가 무엇일까요?

주일미사 빠진 것과 다른 사람을 미워한 것입니다.

송봉모 신부님께서 쓰신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이라는 책에서 용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요, 우리 모두가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어렵다고 느껴지는 용서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성경 읽기

1.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오 6,14~15)

2.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마태오 18,21~22)

3.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오 18,35)

용서란 무엇인가?

첫째로, 용서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 실수, 죄, 잘못을 밝게 헤아려 동정하고 너그럽게 받아 주는 것.

나를 공격한 사람에 대한 앙갚음을 하지 않기로 함.

나를 고소한 사람, 나를 모욕한 사람에 대한 보복이나 앙갚음을 포기함.

우리는 흔히 "용서"라고 하면 정신적, 감정적, 심리적, 정서적, 기분학적 피해에 대한 용서를 생각하는데,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서 용서가 빚탕감으로 비유되듯이 물질적인 면에서의 용서도 포함됩니다.

둘째, 용서란 나 자신이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인 것을 자각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의 인간관계(부부, 부모와 자녀 사이, 회사 동료, 친구, 교회, 사회적 인간관계 등)에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는 이유는 "나는 정당하다, 나는 자격이 있다,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합리적이다, 나는 의무를 다했다, 나는 권리가 있다, 나는 예의를 지켰다, 나의 뜻은 순수하다" 등으로 나 자신은 옳은 데 반하여 상대방은 이런 나를 몰라주고 경우에 어긋나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곧 상대방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고, 언젠가 때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앙갚음-보복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상대방을 무시하고 살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 말씀에서 이런 태도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무자비한 종과 같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자라고 경고하십니다.

왜냐고요?

나 자신이 알고도 혹은 무의식 중 모르고 행한 무례-무 경우-억지-어리석음-욕심-제멋대로의 고집 등은 전혀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인 것을 자각할 때만이 용서가 가능합니다.

셋째, 용서한다는 것은 내게 일백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의 형편을 역지사지하며 너그럽게 헤아린 다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기다려 준다는 것입니다.

혹 지혜가 부족하고, 뭘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였다면 역정-짜증-화-법을 내세우기 전에 나의 지혜를 나누어 주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한다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오래 참는다는 것입니다.

1. 용서,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

우선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아마 죄를 안 짓는 것과 용서하는 것이라고 할 만금 용서는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한 번에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선은 내가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천하의 악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용서를 어려워하고 잘하지 못합니다.

왜 용서는 어려운 것일까요?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상대방이 잘못했는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너무나 쉽게 용서하면 정의가 무너진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또 상대방을 용서해 주면, 상대방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꼴을 볼 수가 없어서이고, 마지막으로는 내가 상대방을 용서해 주면 내게 일어난 비극을 되돌릴 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는 용서가 옳은 것이고, 마땅히 좋은 것인 줄을 알면서도 용서에 반대되는 마음들이 올라오기에 용서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2. 그래도 하느님은 용서하기를 바라신다.

주님의 기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만 탤런트를 빚진 종과 백 데나리온을 빚진 종의 비유 등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대해 자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기를 바라십니다.

용서는 바로 하느님 나라의 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최고의 사랑인 십자가의 사랑의 핵심은 바로 용서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가면서도 죄인들의 용서를 청하셨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용서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 때,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3. 용서는 자신을 위한 길

우리 가운데 일부러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에게 잘못했을 때, 그 사람을 미워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우리 자신을 병들게 하는 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준 상처 그 자체보다 그 사람을 향한 원망과 미움, 분노 등이 우리를 더욱 병들게 합니다.

마치 뱀에게 물렸을 때, 물린 상처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상처에서 퍼진 독 때문에 죽는 것처럼 말이지요.

실제로 정신건강의 측면에서 용서와 육신의 건강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화병이라는 말이 왜 생겼습니까?

미움, 원망, 분노 이런 것들이 마음만 병들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 몸을 약하게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 증오와 원망의 마음들이 가득할 때, 나만 병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의 미움의 마음들은 내가 원하지 않
아도 의도하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밖에서 속상한 일을 겪고 나서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화풀이해 본 적 없으십니까?

늘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세상 탓, 남 탓하며 부정적인 말만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싶어 하십니까?

우리 마음속의 미움의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병들게 하거나 사람들이 나를 멀리하게 됩니다.

미움은 악순환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한없이 미워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닮아가곤 합니다.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들이 부모를 원망하면서 나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결국에는 닮아가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 마음속에 상대방에 대한 미움의 마음들이 가득해지면, 상대방의 미운 모습들이 내 삶에 스며들게 됩니다.

미움의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이유들 중에는 복수에 대한 바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그대로 혹은 더욱 심하게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미움을 더욱 강하게 만들지요.

그러나 복수는 결국 자신을 망하게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이고, 우리 영혼을 위해서입니다.

여기까지는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4. 구체적으로 용서하기 위하여

1) 용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며 용서하려면 먼저 결심이 필요하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겪은 상처들의 많은 경우는 그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잊히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가슴에 사무쳐 도저히 잊히지 않고,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아픈 그런 일도 있지요.

용서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이 필요하고 용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용서의 목적이 꼭 상대방을 위해서일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느라 마음을 허비하고 있는 자신을 위해서, 마음속에 가득 찬 증오 때문에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있는 나 자신이 건강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라도 용서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용서의 시작은 용서할 의지를 갖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2) 용서하기로 결심한 다음에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자.

앞서 용서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했습니다.

용서의 결심이 섰어도 끓어오르는 미움과 증오는 다시 용서의 결심을 식혀 버릴 수 있습니다.

용서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가장 확실한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명령만 던져 놓고 가만히 있을 분이 아니라 우리가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용서를 위해 어떻게 하느님께 도움을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주님의 기도만이라도 계속 바쳐 보십 시오.

한 번씩 그럴 때 있지 않으십니까? "오늘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고 기도할 때, 마음이 잠시 주저한 적 말입니다.

아직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한 이들이 있을 때, 주님의 기도는 우리 양심을 꿰찌릅니다. 양심이 꿰찔린다고 해서 기도를 멈추지 마시고, 계속 바치다 보면 조금씩 용서할 의지와 힘이 생겨날 것입니다.

3) 상처 치유의 열쇠는 나 자신에게

간혹 어떤 분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가 낫기를 바라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탓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것은 내 탓이 아니더라도 그 상처를 이겨내야 하는 것은 내
몫입니다.

남은 생애를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건강한 삶을 살거나 계속 미움을 간직한 채 상대방을 원망하며 불행한 삶을 이어갈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누가 우리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모든 것이 다 타버렸지요.

불 지른 사람만 욕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불타버린 집에서 계속 사느냐, 어떻게든 다시 새로 집은 짓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얘기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의 시작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 나를 아프게 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용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용서에 대한 마음가짐이 이 정도 되었으면 이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이해하기를 시도해 보면 좋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는 똑같이 태어납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저마다 접한 환경이나 조건들이 달라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상스러운 말과 폭력으로 상처를 주었다면 그 사람 역시도 살아오면서 그러한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래 인간이 사악하고 나쁜 존재가 아니라 그 사람 역시도 다른 상처에 곪아 들면서 그리 성장해 온 것이지요.

세상에 나쁜 사람이란 없습니다.

다만 아픈 사람이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이해해 보는 것입니다.

5) 값싼 용서와 섣부른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니다.

방금 말씀드린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때로는 상대방의 잘못까지도 합리화시킬 수도 있는데, 진정한 용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확실하게 짚고, 그것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릴 수도 있지, 남들도 그 정도 일을 겪으니까, 그래도 어면 면은 좋았으니까,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상황이 어떻고, 자라온 환경이 어떻더라도 그 행동이나 말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야, 그러나 나는 용서할 거야 라는 태도여야 합니다.

특히 친밀한 관계 안에서 갈등을 피하기 위해 섣부르게 용서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자신의 의지로 용서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강박감에서 쫓기듯 하는 용서이기에 상대방에게서 받은 상처와 아픔을 억누르게 됩니다.

오히려 나중에 더 크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6) 용서의 완성을 위해서는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나서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신자들은 더 할 것입니다.

미사 때마다 '제 탓이오'를 외치고 있으니까요.

내가 뭔가를 잘못했으니 상대방이 나에게 그런 일을 했을 것이라 자책하며 자신의 상처가 더 커져갑니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무조건 상대방 탓이다. 아니면 내 탓이다를 따져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누가 얼마만큼의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 잘못의 무게가 어떠한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겠지요.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너무 자만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셔도 그 용서를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유다와 베드로를 보십시오.

둘 다 예수님을 배신한 죄를 지었지만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또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면서 누구를 용
서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누구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나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에 대한 구체적인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용서를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용서는 결국 나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 자신마저도 용서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용서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용서에 대해 우리가 오해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5. 용서에 대한 몇 가지 오해

1) 용서하면 몸과 마음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여야 한다.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하더라도 미움이 바로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용서가 안되었구나, 용서에 실패했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나약한 마음에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용서를 결심하고 상처가 아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요.

병원에 한 번 갔다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다이어트 일주일 했다고 몸매가 확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용서하기로 결심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잘한 일이고, 아직 마음의 상처가 덜 아물었다고 용서를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꾸준히 결심한 마음을 이어가고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용서는 곧 화해다.

용서와 화해는 다릅니다.

용서는 상대방과 관계없이 하는 나의 행위입니다.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화해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일입니다.

화해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진심 어린 반성과 회개가 필요한 일입니다.

용서했다고 반드시 그 사람과 잘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찾아가서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랬다가는 더 큰 상처만 받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서는 상대방과 관계없이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고결한 작업입니다.

3) 용서했으면 다 잊어야 한다.

용서했다고 하면 그 잘못들을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용서의 목적 중에 하나가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같은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에 대한 미움을 잊는 것이지 상대방의 잘못된 행위나 말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잊어버리면 우리는 같은 상처를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용서는 하되 내가 무엇 때문에 상처를 받았는지를 기억해야만 다시는 같은 상처로 괴로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4) 중독자나 정신적 문제가 있는 병자와 관련된 오해

알코올 중독이나 여러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 가정폭력을 행한다고 합시다.

이러한 사람에 대해 용서한다고 참고 견디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사랑으로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일기도하면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애석하지만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와 인내보다 치료가 더 필요합니다.

아픈 것이에요.

몸과 마음이 고장 난 것입니다.

치료 없이 참고 견디는 것은 마치 고장 난 차를 뒤에서 미는 것과 같습니다.

갈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차를 고쳐서 가는 게 훨씬 수월한 일이지 않습니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용서 이전에 치료가 먼저 필요합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을 때, 용서가 더 의미 있어집니다.

이상으로 용서에 대한 오해들을 알아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책의 저자이신 송봉모 신부님께서 제안하신 효과적인 용서 방법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6. 효과적인 용서 방법

베개를 가지고 십자가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라.

화가 나면 베개를 쳐라.

어느 정도 화가 삭혀졌으면, 이제는 증오심에서 벗어나 막힌 한을 풀고 싶다고 말씀드려라.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라.

자신의 상처와 예수님의 상처를 비교해 보고 또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비극이 생겼는지를 물어보라.

상처를 준 사건에 에수님을 초대하라.

내가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고, 지금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하는지를 예수님께 말씀드려라.

이상의 방법으로도 한 번에 미움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시작이 반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겠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이루어 낸 것이고, 중간에 용서의 마음이 식어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시 결심하는 것은 더 쉬울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고해소에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힘들어하셨습니다.

제가 준비한 것들이 여러분의 상처 입은 마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올 한 해 누군가에 대한 밉고 속상한 마음을 아직 떨쳐 내지 못했다면 오늘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미움을 몰아냅시다.

더 이상 과거의 상처와 원망 속에 오늘의 나 자신을 빼앗기지 맙시다.

모두들 용서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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