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5-코모

2022. 7. 12. 10:34해외여행

6월 5일 월요일,

코모로 가기 위해 다시 밀라노의 역으로 나왔다.

오늘 일정은 코모까지는 기차로 이동, 코모 중앙광장에 있는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벨라지오에서 하선, 동네 한 바퀴 구경 후 버스를 타고 코모 광장으로 돌아와 푸니쿨라를 타고 코모 산 정상 부근의 마을 브루나테 구경, 내려와 코모 광장 한편에 있는 볼트 박물관 구경 후 밀라노 귀환이었다.

코모는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조성된 코모호을 끼고 있는 호반 도시로 산업혁명기에는 견직물 공업이 유명하였으나 지금은 조용한 휴양도시로 더 각광받고 있어 호수 주변 곳곳에는 세계적인 부호들의 호화로운 별장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기차는 정시에 가리발디 역을 출발하였다.

30분쯤 지났을까 기차는 이름 모를 역에 정차하더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나더니 스피커에서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어 방송이 몇 번 나왔다.

우리는 망연히 창밖을 보며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역무원 두 사람이 들어오더니 영어로 코모? 하길래 예스! 했더니 체인지 트레인이라고 말하며 플랫폼 1으로 가라고 하였다.

기차가 고장 난 것이었다.

30분을 올 때에도 제 속도를 내는 것 같지 않더니 마침내 기차가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우리는 짐이 없어서 다행이라며 황급히 내려 지하연결 통로를 지나 1번 플랫폼에서 다른 열차를 기다려 탔다.

덕분에 당초 계획보다 1시간 정도 지체되고 말았다.

여행 기간 중에 파업으로 인한 결행이나 연착을 걱정하기는 했으나 고장으로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코모 역에서 내려 선착장이 있는 광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소 생뚱맞은 조형물과 마주했다.

오른손은 활짝 펴서 하늘을 향해 콘크리트 좌대에 수직으로 세워져 있고 왼손은 바닥에 수평으로 내려진 모습의 조형물이었다.

공동의 가치를 위해 사회에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헌정된 기념비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왜 이런 조형물이 이곳에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강남스타일의 이탈리아 버전인가 하며 웃음 지었다.

우리는 비슷하게 손 모양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10여 분을 더 걸어 벨라지오 행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당연히 늦었으므로 배는 떠나고 없었고 다음 배 시간은 30분 이후에 있었다.

이미 예정 시간보다 많이 늦은 관계로 벨라지오 방문은 어렵게 되었는데 하늘마저 먹구름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출발 전 코모 날씨를 검색했을 때 비 예보가 없었던 터라 우산도 가지고 오지 못한 우리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광장으로 나섰을 때 본격적으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한지 비가 쏟아지자 아프리카 계 청년이 우산을 팔기 시작했다.

 우리도 5유로에 우산 하나를 샀다.

두 사람이 한 개의 우산으로 퍼붓는 피를 모두 가릴 수는 없는 일이라 우리는 식당가의 처마로 몸을 옮겨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비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비를 피할 처마를 빌린 인연으로 들어오게 된 그 식당에서 우리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도 할 겸 해서 피자와 콜라로 점심을 해결했다.

식당에서 느긋하게 점심과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나서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빗줄기는 상당히 가늘어져 있어서 더 이상 식당에서 시간을 지체하기보다는 브루나테 마을로 올라가 보기로 하고 식당 문을 나섰다.

 

비안개로 흐릿한 주변 산과 호수를 바라보며 식당에서 푸니쿨라 탑승장까지 호수 주변의 산책로를 10여 분 걸어갔다.

왕복 티켓값으로 얼마의 유로를 카드로 계산하고 푸니쿨라에 탑승하려는데 티켓을 받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헐레벌떡 티켓 판매소에 가서 티켓을 다시 받아와야만 했다.

급경사를 힘겹게 올라간 열차는 우리를 운무가 가득한 산꼭대기 부근 마을에 내려놓았다.

고도를 높여서일까 푸니쿨라에서 내리니 빗줄기가 더 굵어져 있었다.

창문 주변은 운무로 가득 차 보이는 것은 비안개뿐으로 우리를 비롯한 여행객들은 그만 푸니쿨라 정류장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한국 관광객 일행을 만났는데 특이하게도 아버지와 딸로 보이는 남녀가 있었다.

무료했던 우리는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외국에 근무하게 된 딸이 한국에 홀로 있는 아버지를 초청하여 효도관광 중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나중에 하나뿐인 딸에게 이런 효도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 딸의 기특한 마음을 추억으로 남겨 두었다.

이곳에 특별한 유적은 없다.

그저 조용한 이탈리아 마을의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가파른 산지의 조그만 평지에 조성된 성당 그리고 비가 그치면 펼쳐질 호수와 산의 조망이 전부인 곳이다.

우리는 빗속을 뚫고 한동안 이 골목 저 골목을 쏘다닌 후 문이 열려 있는 조그만 성당에 들어가 잠시 휴식과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성당에서 나오니 비구름이 걷혀 있었다.

2주일간의 이탈리아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은 비가 그치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코모가 위치한 곳이 알프스산맥의 남서쪽이다 보니 날씨 변화가 심한 듯했다.

높은 산 위에서 바라보는 코모의 올드 타운과 코모 호수 그리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높고 낮은 산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려고 이곳까지 온 것이리라.

방문의 흔적을 남기고 내려가는 푸니쿨라를 타려고 했더니 말썽이던 티켓이 이번에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골목을 산책하면서 마을 길 어디엔가 떨어뜨린 것만 같았다.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티켓을 찾아 골목길을 다시 다닐 수도 없고 매표소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개구멍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매표소도 없었지만 표를 검사하는 직원도 없고 이용객도 우리뿐이어서 그나마 덜 창피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 선착장 인근에 있는 템피오 볼티아노를 방문했다.

볼트 박물관으로 번역되는데 1745년 이곳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며 전기 축전기와 전압의 측정 기준인 볼트(V)를 발명한 알렉산드로 볼타를 기념하기 위한 조그만 박물관이었다.

건물 내부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조촐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현대 문명은 우리가 미처 다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 없는 수많은 과학자의 노고 덕분임을 생각할 때 고향 마을에 세워진 이 기념관은 평생을 이곳에서 살며 연구에 전념했던 볼타에게 헌정된 이 마을 사람들의 조그만 선물일 것이다.

코모 중심가의 두오모를 둘러본 후 다시 코모역으로 와서 별 탈 없는 밀라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 식사 해결을 위해 나온 우리는 어제의 그 유쾌했던 웨이터를 기억하며 같은 식당을 다시 찾아갔다.

이렇게 만 이틀간의 밀라노 일정이 끝이 났다.
 
내일부터는 베로나를 거쳐 베니스로 향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전에 호텔 측의 요구로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숙박비를 지급해야 하고 그때 아마도 우리는 에어컨 사용료 15유로를 가지고 옥신각신할 일을 마주치게 될 것이었다.

어떻게 영어로 우리의 억울함을 잘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잘 생각나지 않는 영어 단어와 문장을 곱씹으며 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 조용해진 호텔방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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