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6-베로나

2022. 7. 12. 14:50해외여행

6월 6일 화요일, 베로나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식사를 마치고 호텔을 나섰다.

어젯밤에 생각해 두었던 수많은 영어 단어와 문장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호텔 지배인은 에어컨 사용료 15유로를 추가로 요구하지 않고 원래 예약했던 비용만을 나에게 현금으로 요구했다.

 

시끄럽다는 나의 불만을 감안해서일까 아니면 원래 안 받는 것인데 동양인인 나에게 겁만 준 것일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직접 물어서 궁금증을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조용히 그리고 재빨리 호텔 문을 나섰다.

 

그런데 한참을 걸어오고 나서야 현금으로 숙박비를 지불하고서는 영수증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다시 갔다가 올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어 부득이하게 이탈리아의 신뢰 시스템을 믿고 그냥 가는 수밖에 없었다.

베로나행 기차에 몸을 실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 앱으로 들어가 승인내역을 확인하였더니 그 나쁜 호텔 지배인은 같은 금액의 숙박비를 청구해 놓은 것이 아닌가?

 

이런 날 도둑놈들을 보았나! 나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부킹닷컴에 장문의 불만 민원을 영어로 보냈다.

나는 베로나 여행도 끝이 나고 베니스 숙소에 도착해서야 부킹닷컴 측으로부터 겨우 답신을 받을 수 있었는데 승인금액은 디파짓 즉 숙박비를 지불하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을 위하 걸어둔 보증금으로 현금으로 숙박비를 지불했으면 청구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말이 옳아서 이중으로 숙박비를 지불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영수증을 미리 받아 두지 못했던 나의 불찰로 인해 베로나 가는 기차 안에서 이탈리아 북부 지방을 구경하는 여유도 누리지 못하였고 카드 결제일이 지날 때까지 그들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다.

밀라노 숙박비에 대한 깔끔하지 못한 추억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베로나 역에 내려 가방을 맡긴 뒤 걸어서 베로나 구시가지를 구경하러 나섰다.

베로나는 아디제 강이 굽어 도는 조용한 도시로 이곳에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단 하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역 앞에 있는 옛 성곽의 흔적을 지나 아레나를 먼저 들렸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무슨 공연이 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주변에는 무대조명시설 같은 것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방송 중계용 차량들도 보이는 이곳을 배경으로 몇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혼잡한 인파를 헤치고 나와 줄리엣의 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원형 경기장인데 외벽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줄리엣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예의 명품 상점들이 즐비해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당신의 지갑을 과감히 열어젖히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이곳저곳에 눈길을 주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목적지로 향했다.

줄리엣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낮은 돔형 출입문을 들어섰을 때 우리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좌우 벽에 있는 수많은 낙서들이었다.

사랑의 맹세에서부터 누가 언제 왔다 갔다는 등의 낙서들이 빈틈없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고 그 위에 또 다른 낙서들이 덧입혀져 있었다.

줄리엣의 집 정원까지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나 실내로 들어가서 줄리엣이 로미오의 세레나데를 들으며 사랑에 빠졌던 발코니까지 올라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내 입장 대신 정원에 있는 등신대의 줄리엣 청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데 몰두하는데 사람들의 손이 조금 민망한 곳에 위치해 있다.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에 손을 대고 두 연인이 사진을 찍으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손이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스쳐 지나갔고 따라서 청동은 닳고 닳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속설과는 상관없는 왼쪽 가슴의 청동 부분도 덜 반짝이기는 하지만 처지는 비슷했다.

우리도 둘이서 손을 포개고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머무르고 있어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각자 한 장씩 사진을 찍었다.

기념촬영을 위해 성추행해서 죄송합니다. 줄리엣 할머니, 로미오 할아버지.

 

복잡한 인파를 뒤로하고 찾아간 곳은 로미오의 집, 그런데 여기는 줄리엣의 집과는 반전의 상황이 펼쳐졌다.

우선 찾기가 쉽지 않았고 간판도 조그마했으며 문도 열려 있지 않고 찾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공연한 헛걸음만 한 셈이었다.

쉬엄쉬엄 마을 구경하면서 도착한 곳은 카스텔 베키오 다리와 궁전.

아디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붉은 벽돌로 지어져 주변 경관과 잘 어울렸고 다리 건너에는 넓은 녹지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이곳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맑은 강을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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