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9-플리트비체숙소

2022. 7. 25. 14:43해외여행-크로아티아.스위스

저녁거리와 과일 등을 사기 위해 라스토케 인근 슈퍼를 들렸다가 플리트비체에서 5km 전에 있는 숙소로 차를 몰아갔다.

구글 내비게이션의 기능은 훌륭해서 착오 없이 푸른 풀밭 위에 예쁜 모양으로 얹혀진 2층 집을 찾아 주었다.

마당은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포장된 부분과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1층 벽에는 비를 가릴 수 있는 처마와 장미꽃이 만발한 작은 화단이 붙어 있었다.

가급적 비를 맞지 않고 가방을 내리기 위해 차를 뒤로 후진하여 처마 밑으로 댄 후 운전석에서 내려 트렁크 문을 열고 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웰컴 웰컴 하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이집 호스테스인 마리아 할머니였다.

처음 보았을 때는 불편한 걸음걸이와 뚱뚱한 몸매 그리고 흰 머리카락으로 인해 나이가 70대 후반으로 보였다.

 

마리아 할머니는 우리를 2층 게스트하우스로 안내해 주면서 쉼 없이 활달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 외에는 영어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세계 공통어인 짧은 영어 단어와 손짓 발짓으로 할머니와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다.

 

주방과 거실과 방을 안내해 준 할머니는 우리 모두의 여권을 요구하더니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서는 남자들이 주방에서 라스토케에서 쇼핑한 음식물을 냉장고에 정리하고 있을 때 다른 방으로 가서는 여성이라는 동질감을 발휘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나누고 있었다.

 

평촌 처형과 마리아 자매는 각자의 나이를 확인하고는 동갑이라며 서로 놀라워하였다고 한다.

평촌 처형은 생각보다 할머니 나이가 적어서, 마리아 할머니는 평촌 처형이 생각보다 젊어 보여서......

 

할머니는 우리에게 터키식 커피를 타 줄 수 있으니 자기가 쓰고 있는 1층 별실로 내려오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시간도 남고 할 일도 딱히 없고 해서 흔쾌히 내려가겠다고 했다.

 

모두들 정해진 방으로 가서 짐을 푼 후 할머니의 거실이 있는 1층 별실로 갔다.

할머니는 둥그런 테이블에 우리를 앉게 하고는 터키식 커피와 자기가 직접 만든 산딸기 주스를 가져와 우리에게 내놓았다.

 

주스와 커피 맛은 훌륭했다.

 하여간 자그레브에서 만난 할아버지도 엄청나게 친절해서 서로 영어로 소통이 원활하지는 못했지만 뭐라도 하나 더 알려 주려고 해서 나는 연신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친절했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곳 할머니 호스트도 리쿼라고 하는 손님 접대용 술도 가져왔다.

자그레브에서 술을 좋아하는 대구 형님이 맛을 보았을 때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독했던 술이 다시 이곳 플리트비체 인근 숙소에서도 손님 접대용으로 나왔다.

 

아마도 크로아티아가 터키의 지배를 200년 정도 받은 영향이 아닐까 유추할 수 있었는데 언젠가 본 여행 다큐멘터리에서 터키에서는 귀한 손님을 맞을 때면 꼭 독주 한 잔을 권하는 풍습을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크로아티아를 대표하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여준 친절에 적지 아니 놀랐다.

 

터키식 커피는 냄비에 물을 끓인 후 커피 가루를 넣고 조금 더 끓인 커피 잔에 부어 마시는데 풍미가 훌륭했다.

그런데 커피 가루를 잘 가라앉힌 뒤 위의 맑은 커피 물만 마셔야 하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한꺼번에 마셨다가 입안에 가득 들어붙은 커피가루를 헹궈내느라 물을 들이켜야만 했다.

 

할머니와 우리는 내가 중간에 떠듬떠듬 통역을 해주어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았다.

할머니 말로는 2층은 게스트용으로 쓰고 1층은 딸과 사위가 거주하고 자기는 같이 붙어 있는 별실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 인구가 450만이라고 내가 말했더니 지금은 5백만을 넘겼다고 정정해 주었다.

자기에게 딸 4명이 있는데 그중 막내가 경찰이 되어 자다르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높은 물가에 비해 임금이 적어 살기 어렵다고 말하였다.

할머니가 말한 월급을 우리 돈으로 암산해 보니 150만 원 정도였는데 크로아티아 물가가 서유럽에 비해 싸다고 하지만 도시의 물가 수준은 우리랑 비슷해서 우리의 2/3 수준인 임금수준으로는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틀리지 않는 말이었다.

 

또 할머니가 젊을 때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자기가 어렵게 네 딸을 키웠고 이제는 딸들이 잘 커 각자 자기 벌이를 해서 이렇게 편안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근 한 시간 동안 할머니와 우리는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 할머니는 자그레브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이에 비해서는 영어 실력이 좋아 나를 감탄하게 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플리트비체의 입장권을 온라인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사실을 에어비엔비 앱을 통해 나에게 문자로 알려 주어 우리 여행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5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할머니의 거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거실 앞 풀밭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어 할머니와의 만남을 기억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우리는 숙소 정리를 마치고 마을 안으로 산책을 갔다.

 

차가 다니기에도 넓지 않은 마을 길 좌우에는 우리 숙소와 비슷한 집들이 한두 채씩 있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풍경이었는데 조그만 갈림길에는 콘크리트로 제단을 만들고 작은 십자가도 세워져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 기온은 많이 떨어져 추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해 산책을 시작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숙소로 돌아와 내일 플리트 비체 트레킹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음악소리가 울려 2층에서 내려다보니 할머니와 손녀가 손을 잡고 잔디밭에서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할머니와 손녀에게는 이것이 평화로운 일상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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