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9-할아버지 연습

2022. 8. 27. 09:44이런일저런글

나의 손위 동서의 딸, 그러니까 평촌 처형의 딸은 스코틀랜드 애딘버러에서 살고 있는데 결혼 후 7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작년 말에 엄마가 되었다.

질녀는 남편, 즉 질서와 둘이서 낯설고 물설고 말선 이국땅에서 갓난아이를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며 작년 12월에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고자 코로나를 뚫고 일시 귀국하였다.

우리는 갑자기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정식 명칭은 종조부, 종조모가 되겠지만...

모처럼 집안에 갓난아기가 태어나자 9자매 동서의 단체 카톡 방은 아기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진과 동영상과 이를 본 이모할매들의 격한 리액션으로 쉴 틈이 없었다.

다들 코로나로 인해 아이의 실물을 보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곤 했다.

그런데 이달 들어 아이가 머무르고 있는 평촌 처형 집에 부분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신생아가 갈 곳은 많지 않아 며칠간 나의 집에 머무르는 것으로 결정했다.

27일 밤 아이의 거소를 옮겨야 할 때 몸무게 10kg의 아이가 며칠 머물기 위해 옮겨야 할 짐은 차의 넓은 트렁크도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

낯선 곳에 도착하자 아이는 엄마 품에 딱 붙어 울음을 터뜨리고 나와 아내가 손을 내밀자 고개를 돌리며 낯가림을 하였다.

 

다음날 고즈넉한 절간 같았던 나의 집은 아이의 옹알거림,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 서툰 이모할매의 어르는 소리같은 소음들로 가득 차고 64평의 휑했던 아파트 거실은 아이의 일용품들로 여기저기 어지러워져 있었다.

나와 하루 만에 낯을 익힌 아이를 안아 들고 거실을 오가는데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버둥거려 하마터면 아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잠시동안 안아주었음에도 마치 아령운동을 한 것처럼 팔목에 힘이 들어갔다.

 

갓난아이가 오기 전까지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딸을 중심으로 돌아갔으나 젖먹이가 오자 단번에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때맞춰 분유나 이유식이나 간식을 챙겨 먹이고 분유통을 삶아 씻고 그 사이사이에 아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같이 놀고 그러다가 아이가 잠이 들면 아이 엄마도 같이 자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잠투정 끝에 어렵게 잠이 든 아이를 깨우게 되면 밤새 다 같이 잠을 못 자게 되므로 늦게 귀가하는 딸에게 문 닫는 소리가 크게 울리지 않도록 주의도 주어야 했다.

 

그러니 나도 덩달아 할아버지가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딸이 이미 비혼을 선언한 터라 외손자나 외손녀를 어를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것이 함정...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자 손녀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들 한다.

 

그만큼 육아의 노동이 힘들다는 것이리라.

이웃한 동에 거주하는 성당 자매님이 손자를 돌보다 손목의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한 것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이 처형이 질녀와 같이 손자를 돌본 지난 4개월 동안 체중이 3kg이나 줄었다고 하였다.

어떻든 시간이 지나면 질녀와 아이와 처형은 6월에는 질서가 있는 애딘버러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한동안 갓난아기의 보드라운 피부와 조그만 입술과 앙증맞은 크기의 손발을 랜선으로만 만나보게 될 것이다.​

언젠가 다시 직접 보게 되면 그땐 지금의 애리애리한 피부나 손발은 이미 커져 있겠지...

시간의 힘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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