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0. 18:36ㆍ해외여행-이탈리아
5월 30일 화요일,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늦은 오후에는 아시시로 이동하기로 기차표를 예매해 두었기 때문에 오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관람하기로 하였다.
이른 아침 조식을 먹은 후 민박집 사장에게 양해를 구한 후 여행 가방을 맡겨 두고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임에도 성당으로 들어가려는 인파가 줄을 길게 서 있어서 약 1시간 정도 기다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여 마침내 성당에 입장할 수 있었다.
성당 입구에 있는 성수를 찍어 성호경을 그을려고 하였으나 성수가 없었다.
성수대는 아기 천사가 그릇을 받치고 있고 곳곳에 금박으로 채색되어 있어 아름다웠으나 정작 중요한 성수가 말라 있어 다소 실망스러웠다.
성당 입구의 오른쪽에는 미켈란젤로의 역작 피에타 상이 있다.
성당 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파를 헤치고 가장 앞자리로 나아갔지만 정신이상자의 난동으로 파손의 수난을 당한 이후 보호를 위해 방탄유리로 막아 두었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었다.
자신은 돌에서 불필요한 부분만을 조금 떼어냈을 뿐이라는 천재 작가 미켈란젤로.
하느님이 바라보는 시점에서의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조각했기 때문에 이 피에타 상을 제대로 보려면 인간의 시선이 아닌 하늘에서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한다.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만이 만들거나 그린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만든 조각상이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근접 촬영된 사진을 보면 옷 주름은 물론이거니와 예수의 핏줄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극 사실주의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다음으로 시선을 끄는 것은 제대 중앙의 발다키노.
세계 최대의 단일 청동 작품으로 베르니니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조그마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성당 내부에는 손수건을 들고 달려오는 모습의 베로니카 성녀와 십자가를 발견한 헬레나 성녀 그리고 열두 사도의 전신상이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베로니카 성녀가 예수의 피땀 어린 얼굴을 닦았다는 그 손수건을 이 성당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디에도 전시되어 있지는 않았다.
성당 내부는 그 많은 그림과 조각 작품을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커서 모두 11곳에서 미사를 집전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침 화요일이어서 10시 미사가 어느 감실에서 집전되고 있었다.
우리도 미사, 미사하고 말하며 보안원을 뚫고 자리에 앉아 미사에 참례하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어 미사였지만 미사 전례는 세계적으로 동일하므로 앉았다 일어섰다 하여 그럭저럭 성체를 받아먹을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고 지난 일요일 미사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었다.
미사가 끝난 후 발다키노 앞에 있는 베드로 성인의 청동상으로 갔다.
이 베드로 동상의 오른쪽 발을 만지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도 줄을 섰다가 오른쪽 발을 만지며 짧게 기도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때를 탔는지 왼쪽 발에 비해 오른쪽 발은 발가락 모양이 다 닳아 없어지고 평평하게 되어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다.
이 성당은 베드로 성인의 무덤 위에 세워졌는데 성경에 예수가 베드로에게 나의 교회를 반석-베드로가 반석 즉 바위라는 뜻-위에 세울 것이라는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큰 성당을 짓기 위한 비용 또한 엄청나서 부족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 무제한으로 돈을 받고 면죄부를 발행하였고 이로 인해 루터의 종교개혁이 촉발되어 이후 유럽은 심각한 신구교 갈등으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지하로 내려가 베드로 성인의 묘를 참배하고 그 앞에서 짧은 기도를 드렸다.
지하 무덤에는 베드로 성인의 묘 이외에도 수많은 교황의 무덤이 있어 경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하 무덤을 나오면 코폴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이 된다.
성당 입장은 무료이나 승강기를 이용하려면 8유로를 내야 하는데 그것도 오직 현금으로만 받는다.
여기도 어김없이 긴 대기 행렬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어서 우리는 30분을 기다려 16유로를 내고 승강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승강기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둥근 돔 부분 위가 되는데 아래로 교황님의 어좌 등을 내려다볼 수 있고 그 길을 지나 좁은 통로로 올라가면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꼭대기, 로마에서 제일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있다.
로마의 제일 높은 곳,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코폴라 전망대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어 좁은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온 우리 부부에게 시원함을 선사했다.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고 그 아래 고색창연한 로마의 시내 전경과 수많은 조그만 성당의 둥근 돔과 첨탑들이 시선에 가득 들어왔다.
성당 뒤로는 교황의 사저가 있고 그 잔디 마당에는 교황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코폴라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티칸 시국의 모습은 열쇠를 연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성당 본체는 열쇠의 손잡이에 해당되고 둥근 반원형의 열 주 기둥 두 쌍은 동그란 열쇠 중간 부분을 그리고 산타젤로 성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열쇠의 홈이 있는 긴 부분을, 그리고 열쇠 끝부분은 산타젤로성으로 연상하도록 디자인된 것이다.
대부분의 성당이 그러하듯 이 성당의 평면도를 보면 긴 십자가 모양임을 알 수 있고 동그란 중앙광장 중앙 부분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대형 오벨리스크가 서 있어 해 시계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광장의 3시 방향과 9시 방향에는 같은 모양의 대형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고 성당 입구 좌측에는 베드로 성인, 오른쪽에는 바오로 성인의 동상이 서 있으며 열주 기둥 옥상에도 수많은 성인들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코폴라에서 내려오면 다시 성당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 성당을 방문으로 우리가 로마에서 가 보기로 한 모든 곳을 방문하였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하는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을 조금 지나자 건물 안에 서 있는 알록달록한 원색의 전통 복장을 한 근위병을 볼 수 있었다.
로마교황의 근위병으로 바티칸시국이 보유한 유일한 군사조직인데 그 제복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디자인한 이래 지금까지 당시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교황의 근위병은 스위스의 가톨릭 신자 중 19세 이상 30세 미만의 독신 남성을 대상으로 모집한다고 하는데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가 로마 교황청을 습격하였을 때 147명의 장렬한 죽음으로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지켜낸 이래 수립된 전통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스위스는 금융, 정밀산업, 바이오산업, 관광업 등으로 세계 최고의 소득 수준을 자랑하는 영세 중립국이지만 중세에는 빵을 얻기 위해 청년을 군인으로 수출해야만 했던 가난한 나라였던 것이다.
'해외여행-이탈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0531-아시시-성 프란체스코 성당 (0) | 2022.07.11 |
---|---|
20170530-아시시-카사레오노리호텔 (0) | 2022.07.11 |
20170529-로마-야경 (0) | 2022.07.10 |
20170529-로마-산타스칼라성당 (0) | 2022.07.10 |
20170529-로마-산지오반니인라테라노대성당 (0) | 2022.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