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8-로마-바티칸미술관-천사의성

2022. 7. 10. 10:14해외여행-이탈리아

넷째 날은 5월 28일 일요일, 이날은 바티칸 미술관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당초 계획으로는 산 피에트로 성당을 방문해서 미사를 드리고 싶었던 날이었으나 이날을 꼭 집어 미술관 방문으로 정한 것은 매월 마지막 일요일은 무료입장이기 때문이다.

성인 입장료가 16유로로 20,000원가량 하니까 둘이면 40,000원. 웬만한 한 끼 식사 값은 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단점이 한 가지. 무료입장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는 사실로 모든 로마를 방문하는 여행객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따라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리라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무지막지한 입장 대기 인파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일찍 가서 박물관 정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려면 최소 7시 이전부터 대기해야 하고, 늦게 도착하면 그만큼 많은 인파 뒤에 서서 그 사람들이 다 입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도 1~2시간은 족히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입장하는 데 무슨 시간이 걸리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입장할 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는 등의 보안 절차가 까다로워 엄청난 대기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던 저렇게 하던 최소 2시간의 대기시간이 필요한 만큼 우리는 8시쯤 도착하기로 하였다.

미술관은 숙소에서 걸어서 한 시간 정도이지만 아침부터 걷기에는 체력이 벌써 고갈되었기 때문에 테르미니 지하철역에서 전철 표를 사서 가기로 하였다.

승무원과 말을 섞기 싫어 자판기 앞에 서서 유로 동전을 투입하였는데 동전 투입구가 넓어 그만 동전이 기계 안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공항버스 티켓을 살 때 사기당한 것도 생각나고 해서 억울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마침 검침원으로 보이는 덩치 큰 사람이 보였다.

그에게 짧은 영어로 기계가 내 동전을 삼켰다고 했더니 그도 뭐라 구시렁거리며 기계 문을 열어 주었다.

그 순간 나는 하느님의 공평하심에 감사했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이 떨어뜨리고 간 동전이 서너 개 있었던 것이다.

공항버스 표를 사면서 사기당해 잃어버렸던 2유로를 다시 되찾는 순간이었다.

순간 그 검침원이 뭐라 했지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내 동전 외에 나머지 동전도 감사히 챙겼다.

우여곡절 끝에 전철 표를 왕복으로 4장 사서 들어갔다.

유럽의 전철은 우리와 달리 모든 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안에서도 그렇고 밖에서도 그렇지만 내리거나 타고자 하는 사람이 열림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 사실을 미리 블로거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순간 잊어버리고 멍하니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외국인이 나 대신 버튼을 눌러 주어 탈 수 있었다.

오타비아노 역에서 내려 왼쪽으로 올라가 바티칸 북쪽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예상대로 엄청난 대기 인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입장할 수 있을지 짐작할 수도 없는 인파가 바티칸 성벽을 왼쪽으로 두고 좁지 않은 인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술관이 문을 여는 시간까지는 아직도 1시간이 더 남았는데...

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어 마냥 기다렸다. 두 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마침내 정문에 도달했다. 표는 사지 않더라도 소지품 검사 등은 거쳐 입장했다.

관람은 화살표 지시대로 진행하면 되었다. 아마도 연대기 순으로 유물을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관련된 유물과 이집트 문명과 관련된 유물,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들이 순서대로 나왔다.

수많은 유물들이 내 눈앞을 지나갔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함무라비 법전을 새긴 검은 돌과 유명한 폭군인 네로 황제가 썼다는 붉은 대리석으로 만든 터무니없이 큰 욕조 등이다.

중세 시기로 내려오면 세계의 유물보다는 가톨릭 신앙을 주제로 한 직물 제품인 태피스트리 등이 나오는데, 사진 촬영이 허용되어서 수많은 유물들을 사진기에 담아 나중에 포토북 만들 때 유용하게 활용하였다.

12시를 넘어 나머지 시간을 지탱해야 할 에너지를 보충해야 할 때가 되자 우리는 구내매점에 들러 간단히 피자 한쪽과 콜라로 점심을 해결했다.

이곳 매점은 비싸고 맛없기로 유명하다는데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두 시간을 서서 기다리느라 이미 지친 다음에 넓은 박물관을 구경하기 위해 벌써 5시간이나 서 있거나 걸었던 우리는 식당에서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였다.

당초 계획으로는 오전에 미술관 관람을 끝내고 오후에는 산 피에트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미술관 관람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빠른 진행을 위해 오디오 가이드도 없이 유물에 있는 간단한 설명만을 읽으면서 지나왔는데도 점심 식사 전까지 절반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만큼 미술관에 전시된 유물이 많았던 것이다.

우리는 오후 일정은 어찌 되더라도 미술관 관람을 계속하기로 하고 미술관의 상징인 송과체 - 대형 청동 솔방울을 보기 위해 야외로 잠시 나왔다.

불행하게도 청동 솔방울 주변은 공사 중인지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어서 좋은 모양의 사진을 찍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쉬운 대로 기념사진을 남긴 후 나머지 유물을 관람하였다.

지도의 방을 지날 때 금색으로 빛나는 천장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그림들이 천장에 수놓아져 있는데 밝은 황금색을 띠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났다.

미술관의 끝은 시스티나 성당이다.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열리는 신성한 곳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천장에 그려진 유명한 곳이다.

천지창조의 가장 유명한 부분-손가락을 마주하는 그림은 조그마해서 금방 찾기는 어려웠다.

최후의 심판은 정면 벽에 장식된 그림인데 심판하는 하느님 밑에 축 처진 해골 모양의 사람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초상화라는 이야기가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유명하고 위대한 그림을 감상하는 데 시간을 지체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나가는 관광객 숫자를 감안해서 입장을 허용한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관람객들이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을 때 그곳 경비원은 “노포토! 사일런스!”를 연발하고 있었다.

미술관까지는 사진 촬영이 허용되어 있으나 이곳 시스티나 성당 만은 프레시 빛에 의한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함인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고 경비원은 쉼 없이 “노포토! 사일런스!”를 외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은 프레시 없이 알음알음으로 셔터를 누르고 있었는지 여기저기서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실례를 무릅쓰고 프레시 없이 사진 몇 장을 건져 왔다. 죄송합니다. 경비원님!

하지만 발각된다 하더라도 카메라나 핸드폰을 압수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박물관 출구는 유명한 달팽이 계단이다.

1932년에 주세페 모모라는 사람이 설계했다고 하는데 이중 나선 모양으로 설계되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큰 원에서 작은 원으로 수렴되는 모습이 마치 달팽이처럼 보인다.

이곳에서도 기념촬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하였다.

다시 입구로 나온 우리는 바티칸 광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간은 벌써 3시를 넘어 4시를 향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무거웠고 햇빛은 여전히 강렬하여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당연히 이 시간이면 산 피에트로 성당에는 입장하려는 사람이 없으려니 하고 광장에 도착해 보니 그 시간에도 입장객 줄이 반대편 회랑까지 이어져 있었다.

정말 로마에는 관광객이 넘쳐 났다.

로마 시민들이 무뚝뚝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한 번이지만 그들에게는 똑같은 일상이 무한 반복 재생되는 지옥(?) 일 수 있으니 그들에게 친절하게 웃으라고 강요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베네치아 시민들이 관광객들 때문에 자신의 일상이 무너진다며 오버 투어리즘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인다는 외신에 다소나마 공감이 들었다.

우리도 수많은 관광객 중의 하나였지만 다른 수많은 관광객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선택의 기로!

산 피에트로 성당 입장을 위해 줄을 서기에는 우리의 몸이 너무나 지쳐 있어 성당 방문은 다음날로 미루기로 하고 광장 주변에 있는 성물방에 들러 지인에게 줄 성물을 사고, 가까운 곳에 있는 천사의 성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성물을 몇 개 건진 후 방문한 천사의 성. 원래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묘소였으나 유사시 교황의 피신처로 활용되어온 까닭에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으며 교황의 거처에서 이곳까지는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당연히 우리는 지하통로를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곳 꼭대기는 라파엘 천사가 칼집에 칼을 집어넣는 자세의 청동 상이 서 있는데 590년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페스트 퇴치를 기원하며 기도드린 후 꿈에 이 모습을 한 라파엘 천사를 보았고 실제로 그다음 날부터 페스트가 사라져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천사상은 하늘로부터 몇 번이나 벼락을 맞아 그때마다 다시 제작해서 세웠다고 하는데 피뢰침을 세운 후에야 비로소 평화를 얻었다고 한다.

이를 끝으로 바티칸 시국 방문을 마치고 숙소로 귀환한 우리는 한식 만찬과 맥주로 감동 깊었지만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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